본문 : 마가복음 2:1-7, 17

1 며칠이 지나서,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 예수가 집에 계신다는 말이 퍼지니,
2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서, 마침내 문 앞에조차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 때에 한 중풍병 환자를 네 사람이 데리고 왔다.
4 무리 때문에 예수께로 데리고 갈 수 없어서, 예수가 계신 곳 위의 지붕을 걷어내고, 구멍을 뚫어서, 중풍병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를 달아 내렸다.
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6 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였다.
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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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치유가 일어나기 위한 원리를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주님의 기적과 치유를 받기 위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중풍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나온 네 명의 친구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께 데리고 나오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분명 고쳐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을 예수님께서보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2:5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기 원했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지붕까지 뚫어서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그 믿음을 예수님이 보시고 고쳐 주신 것입니다. 여러 다른 병자들을 고쳐 주셨을 때도 늘 따라오는 말이 “그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믿음의 시각입니다. 병을 바라보는 시각,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중풍은 지금도 낫기 어려운 병입니다. 온몸이 마비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38년된 중풍병자가 소개됩니다. 그 당시 낫지 못하는, 고치기 불가능한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네 명의 친구들이 그 중풍병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들고 왔습니다. 사람이 많아 들어가지 못하자 지붕을 뚫고 그 침상을 달아서 내려놓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께 나아가면 고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떤 사안이나 안건, 어떤 문제를 두고 “이것은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변화될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된 우리가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아닌 “하나님께 맡기고 부탁하면 안 되는 일, 못할 일, 해결되지 않을 일이 없다” 라는 믿음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믿음의 시각과 믿음이 마음이 있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시각과 마음의 태도가 먼저 치유 받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하나님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시각과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 3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골짜기 가운데로 데려 가십니다. 그 골짜기에는 마른 뼈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물으십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믿음을 테스트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에스겔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마른 뼈들을 볼 때 마음속에는 살 수 없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묻는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 물으시니 대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상식적으로는, 내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신다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인 에스겔 선지자 역시 완전히 말라 비틀어진 뼈다귀들을 보니까 “살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솔직한 대답입니다. 사실 에스겔의 대답이 저와 여러분의 대답이 아닙니까? 머리로는,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하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알고 믿는다고 하지만 실제 상황과 현실을 보면 변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것입니다. “변할 것입니다. 될 것입니다. 해결될 것입니다”라고 믿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여러 가지 말씀과 비유로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누가복음 13장을 보면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 나무를 심은 후에 열매를 얻을까 와서 보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포도원지기에게 열매가 없으니 땅만 버리니까 찍어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포도원지기가 주인에게 자신이 둘레를 더 파고 거름을 줄테니 한해만 더 기다려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그 포도원지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우리를 기다리시고 열매 맺을 것을 믿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이시고 그 마음이 다른 영혼을 향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포기하고픈 사람과 상황,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과 상황, 한숨만 나오게 하는 사람과 상황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변할 것이다, 해결될 것이다,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라는 믿음을 갖기 보다는 쉽게 “안된다” 라는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갖고 그런 부정적인 말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할 때 주님께서 우리가 그들을 향해 가져야 할 마음을 무화과 비유를 통해서, 포도원지기의 비유를 통해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변화될 것이고, 열매 맺을 것이라고 믿어 주고 애쓰는 마음과 태도를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병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사일수록 원인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치료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중풍환자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5 “네 죄가 용서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중풍 병을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중풍 병의 원인을 보신 것입니다. 중풍병자가 누워 있는 것이 그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병이 죄가 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병든 자에게 당신의 죄 때문에 병이 든 것이니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시지만 우리는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병자의 죄를 보셨고 병의 원인이 죄임을 아셨기에 죄에 대한 용서를 먼저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2:5절에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라며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때 복수형 ‘그들의 믿음’은 단지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만이 아닌 병자의 믿음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도 믿음이 있으니까 친구들이 예수님께 가자고 할 때 동의하고 따라 나온 것이고 지붕을 뚫을 때도 말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네 죄가 용서 받았다”라고 했을 때 펄쩍 뛰면서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말합니까?” 라고 따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죄가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정한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말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 해결이 안된다고 하는 이유와 원인이 내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손가락을 다른 사람을 향해 “너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 라는 포인트합니다. “이것이 없어서, 저것이 없어서, 이렇게 저 사람이 안해서”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죄의 문제입니다. 내가 신앙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문제의 원인이고, 정체성의 원인입니다.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내 탓이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치유 받고 회복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내가 고침을 받아야 할 병자이고,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2: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세히 나를 살펴보면 내가 문제임을 깨닫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주님의 거룩한 말씀의 빛으로 내 자신을 비춰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는 거짓된 자임을 깨닫습니다. 내가 바로 의인인 줄 착각하고 살던 바리새인임을 깨닫습니다. 온 맘이 아닌 갈라진 마음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는 자임을 깨닫습니다.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무력한 자임을 깨닫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죄인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치료하심을, 용서하심을 간절히 부르짖어야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바로 영적으로 마비된 우리를 고치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내 자신이 중풍병에 걸린 환자요 죄인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나오고, 내 주변에 영적으로 중풍 병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영혼들을 이끌고 주님께 데리고 나와서 고침 받고, 용서받고 회복되게 하는 일을 감당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 믿음, 그런 회개, 그런 행함으로 치료받고, 용서받고, 회복되고 부흥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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