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9:17-20
17 이 일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에게 알려지니, 그들은 모두 두려워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18 그리고 신도가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19 또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
20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
사도행전 19장 말씀은 사도 바울이 3차 선교를 할 때 에베소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2차 선교 여행을 할 때 잠시 들렸다가 다시 와서 2년의 시간을 두란노 학당에서 말씀을 매일 가르침으로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 즉 지금의 터키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12절을 보면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그에게서 가져다가 앓는 사람 위에 앉기만 해도 병이 물러가고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갔다” 또한 예수를 믿고 성도가 된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공개하며 19절을 보면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 먹었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의 돈으로 하면 약 오백 만불 정도의 엄청난 돈입니다.
이러한 일들의 사건을 종합하여 20절에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라고 결론을 짓습니다. 20절의 말씀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흥”했다 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부흥은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하심과 말씀을 통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20절의 말씀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떨쳤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삶의 기준이 말씀이 되고, 말씀에 의해 살아가는,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흥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의 부흥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여 믿는 성도들에게 처음 물은 질문이 이것입니다. 2절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 주심이 없으면 변화, 부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능력,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내 감정을 이기지 못합니다. 죄를 이기지 못합니다. 사단의 공격을 이기지 못합니다. 죄의 습성을 이기지 못합니다. 잠시는 되는 것 같지만 결국 다시 원상 복귀 합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비난과 핍박, 박해가 있었음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담대하게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능력과 결단이 아닌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사도 바울만이 아닌 우리도 동일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성령의 힘과 도움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진정한 부흥, 살아남의 역사와 여러 가지 문제와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인내함과 능력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 우리를 도우시도록 기도하며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순종하며 내어 드려야 합니다. 그러할 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들이 언제 자신들의 힘으로 사역했습니까? 기도함 속에 성령의 능력과 도우심을 통해 부흥의 역사를 이루어 가지 않았습니까? 우리 교회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함으로 참된 부흥을 이루어 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의 부흥은 말씀의 삶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부흥의 역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고 하니까 성령에만 초점 맞추어 성령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성령파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소위 성령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도만이 전부인 것처럼 생활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십니까?”입니다. 기도 5분, 15분이라고 대답하면 “그것도 기도라고 하니? 최소한 하루에 2-3시간은 해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라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소위 말씀파로 불리 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기도만 하면 되냐? 말씀도 안 읽고. 질문하는 질문이 일년에 성경 몇 번 읽니? 매일 QT는 하니? 성경공부 하고 있니?
부흥의 역사는 기도와 말씀, 성령과 말씀이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과 말씀은 항상 함께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어떻게 받습니까?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겨서 구원을 얻게 됩니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 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자비하심을 따라 거듭나게 씻어주심과 성령으로 새롭게 해 주심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했다가 디도서에는 성령의 씻음으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어떤 것이 옳은 것입니까?
에베소서 1: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니다”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동시에 성령의 인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은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3 “주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처음부터 여러분을 택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성령의 거룩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즉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함께 움직입니다. 떨어져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6:17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검은 즉 말씀의 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삶이 있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 때 성령의 충만함과 역사가 함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부흥에는 진정한 삶의 변화가 따릅니다. 19절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 진정한 부흥에는 변화가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부흥이 되면 내 삶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떤 변화입니까? 내 삶에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는 일들을 버리는 변화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마술을 부리던 책들을 가져와서 불에 태웠습니다. 사람을 속이는 책들, 더럽고 추한 책들, 내 영혼을 죽이는 책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내어 버리는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내가 진정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면 내 속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내 삶에 추한 것들을 버리게 됩니다. 자원해서 끊게 됩니다.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사도행전 19:24절부터 나옵니다. “데메드리오라고 하는 은장이가 은으로 아데미 여신의 모형 신전들을 만들어서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시켜 주었다” 에베소에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더러운 것들을 내던지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전혀 회개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자신들의 편안함과 이익을 위해서 사도 바울을 몰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복음과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종교는 나 중심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내가 아닌 하나님 중심입니다. 종교는 내 편안함과 이익을 추구하지만 기독교는 내 편안함과 이익을 내려놓고 사명과 말씀을 추구합니다. 종교는 나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지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를 죽이고 예수의 모습으로 변화됨을 추구합니다.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아 그러한 삶의 변화가 생긴 일들을 부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0절의 “이렇게 하여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라는 모습과 같이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말씀으로, 성령으로 진정한 부흥을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