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시편 109:1-10

1 하나님,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잠잠히 계시지 마십시오.
2 악한 자와 속이는 자가 일제히, 나를 보고 입을 열고, 혀를 놀려서 거짓말로 나를 비난합니다.
3 미움으로 가득 찬 말을 나에게 퍼붓고, 이유도 없이 나를 맹렬하게 공격합니다.
4 나는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건만, 그들은 나를 고발합니다.
5 그들은 선을 오히려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6 “그러므로 악인을 시켜, 그와 맞서게 하십시오. 고소인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고발하게 하십시오.
7 그가 재판을 받을 때에, 유죄 판결을 받게 하십시오. 그가 하는 기도는 죄가 되게 하십시오.
8 그가 살 날을 짧게 하시고 그가 하던 일도 다른 사람이 하게 하십시오.
9 그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십시오.
10 그 자식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폐허가 된 집에서마저 쫓겨나서 밥을 빌어먹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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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9편은 다윗이 자신을 비난하고, 힘들고 어렵게 하는 악인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시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도로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나를 힘들게 하는, 악한 일을 하는 자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내하고, 악을 선으로 갚으려고 하고, 그를 축복하고,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본문에서 다윗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이런 기도를 드려도 되는가 라는 의구심이 드는 상대방을 저주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를 향해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8-10절입니다. “그가 살 날을 짧게 하시고 그가 하던 일도 다른 사람이 하게 하십시오. 그 자식들은 아버지 없는 자식이 되게 하고, 그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십시오. 그 자식들은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는 신세가 되고, 폐허가 된 집에서마저 쫓겨나서 밥을 빌어먹게 하십시오”

다윗이 저주의 기도를 하는 상대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가 아닌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는 기도는 죄가 되게 하십시오”이 시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사울 왕이거나,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맨발로 도망칠 때 다윗 왕을 저주하며 쫓아 왔던 시므온이거나, 혹은 어떤 악의 무리일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다윗이 누군가로부터 심히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괴로움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의 기도의 내용이 우리가 알고 배워 왔던 자비와 사랑, 용서는 보이지 않고 저주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빨리 죽게 하소서. 그의 자녀가 고아가 되어 떠돌며 구걸하며 밥을 빌어 먹게 하소서.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듣기에도 거북하고, 진정 이런 기도를 해도 되는 것인지 우리 마음을 거북하게 하는 기도가 아닙니까?

4절에 다윗은 “나는 그들을 사랑하여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건만, 그들은 나를 고발합니다” 라고 하는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라는 했는데 그들을 향해 저주의 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 정말 사랑한다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다윗이 드린 저주의 기도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합니까? 우리도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드린 이 저주의 기도를 어떻게 받아 들이셨을까 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윗이 드린 저주의 기도에 대해 거북하게 생각하고, 꺼려하는 이유는 우리는 기도할 때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앞에서 고상한 기도를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기뻐하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해서 사랑하고, 용서하고, 축복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죽도록 미운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다윗과 같이 저주의 기도를 주저하지 않고 내 쏟아내기 보다“내가 그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과, 견디기 어려운 분노함이 있지만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고, 그를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바꾼 후에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아 주시고, 인정해 주실 것 같은 생각을 알게 모르게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기도는 그런 고상하고, 정제된, 어떻게 표현한다면 얼굴을 화장하여 나의 마음과 감정을 가리고 다스린 기도이기 보다 민낯 그대로의 기도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폭발할 것 같은 분노, 견디지 못할 것 같은 감정 그대로를 거침없이 쏟아 놓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다윗이 상대방을 저주하는 기도를 했지만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그 기도대로 행하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과 시간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감당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그것을 몰랐을까요? 다윗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저주의 기도를 정말로 그 상대방이 자신의 기도대로 그러한 저주가 이루어지기를 진정 바라는 기도이기 보다 마음에 있는 고통과 아픔과 분노의 감정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기를, 그리고 내 안에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기도함 속에 쏟아 놓음으로 마음에 더러운 생각과 감정을 털어 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 우리의 그런 분노와 생각과 감정을 쏟아 놓으면 실수하게 됩니다. 듣는 사람도 그것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쏟아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하늘의 평강으로 마음을 다스려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고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상한 척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들은 예수님께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고, 위선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데 고상한 척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마음 그대로를 쏟아 놓아야 합니다. 감정 그대로 쏟아 놓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직접 저주하며 마음을 쏟아 내면 사단이 납니다. 부작용이 심합니다. 뒷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께서 만지십니다. 때로는 기도하는 그 대상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분명한 것은 마음을 쏟아 놓는 기도하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만지시고, 위로하십니다.

시편 109편의 다윗의 기도를 들으면서 나의 기도는 어떠한지를 돌아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고상한 기도로 일관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 마음을 그대로 하나님께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꾸미고, 외식하는 위선의 기도가 아닌지.

하나님 앞에 우리가 볼 때 놀랄 정도로 저주의 기도까지 쏟아 놓았던 다윗의 삶을 보면 그런 기도가 있었기에 사울 왕이 그렇게 힘들게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반역 속에서도,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에게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쏟아 놓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온유함과 바른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쏟아 놓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쏟아 놓지 말아야 할 저주와 미움과 분노와 원망, 미움의 모습을 쏟아 놓는 죄를 짓게 됨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민낯의 기도, 마음의 모든 감정을 쏟아 놓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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