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3:11-15

11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12 날이 새니, 유대 사람들이 모의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13 이 모의에 가담한 사람은 마흔 명이 넘었다.
14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로 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15 그러니 이제 여러분은 의회와 짜고서, 바울에 관한 일을 좀더 정확하게 알아보려는 척하면서, 천부장에게 청원하여, 바울을 여러분 앞에 끌어내어 오게 하십시오. 우리는 그가 이 곳에 이르기 전에 그를 죽여 버릴 준비를 다 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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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서 같은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두려워하고 있는 바울에게 주신 말씀인 “용기를 내어라” 라는 말씀 즉 “두려워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제 나누었지만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믿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실 때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라는 약속입니다. 다른 것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때 우리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말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나는 네가 지금 만난 문제보다 큰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해 “두려워 말라” 라고 하신 말씀이 366번이 있다고 합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윤년까지 생각하셔서 매일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문제가 크기 때문에,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묵상함으로 나에게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늘이라는 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내게 확신으로 주시는 말씀으로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신 것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워하지 말라 용기를 내라” 라는 말씀을 매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살아있고 지금 내게 주시는, 개인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내게 들려 주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못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누가 담대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매일 살아있는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우리가 담대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닌 내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우리가 두려운 상황과 문제와 사람들 사이에서 담대히 설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살아갈 때 어떠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와도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귀 기울임과 믿음으로 받아 들여 담대함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담대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겁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담대함으로 살아갈 때 나타나는 열매가 있습니다. 담대함의 열매는 바로 사명에 있습니다. 11절 “그 날 밤에 주님께서 바울 곁에 서서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과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 지금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감옥 밖에서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40명이나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담대하라, 용기를 내라” 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담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복음을 로마에서도 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까지 전했던 복음을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현실은 예루살렘에서 잡혀서 감옥에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작정한 사람들이 40명이나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암담한 현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미래의 로마를 이야기 하십니다. 이것이 사명입니다. 사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목적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될 일입니다. 이 사명을 알면 담대함이 생깁니다. 사명이 있는 한 현재의 어려움 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면 그 사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현재의 붙잡힘과 고난과 방해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미래에 너를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명을 너에게 주었기 때문에 그 사명을 이룰 때까지 내가 너를 지키고 인도할 것입니다. 현재의 어려움과 문제는 단지 그 사명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아는 사람은 중간에 환난과 어려움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만 사명을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고통과 아픔이 올지라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사명을 알고 살아가는 자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담대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며 계속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여러 가지 고난과 방해가 비록 있지만 우리를 더 성장시키는 과정이며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신 단계라는 것을 알기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담대한 것입니다.

사명을 알고 사명을 가진 사람은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 하나님의 큰 그림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라는 큰 그림을 보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큰 그림, 사명을 알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노예로 팔아 넘긴 형들이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큰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알기에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서가 아니라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없는 자는 결국 마음도 좁습니다. 현재의 문제만 붙잡고 싸우는 것입니다. 사명이 없으면 넘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를 작은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대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들에게 두려움을 많이 줍니다. 넘어지게 하고 포기하게 하고 원망하게 합니다. 그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앉고 서심을 압니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상황을 아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가 key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만이 세상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십시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다면 내 삶을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사명 때문에 대범한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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