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20:1-4
1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가 모세를 시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지정하여
3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 곳으로 피하게 하여라. 그 곳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
4 살인자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서, 그 성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설명하여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를 성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있을 곳을 마련해 주어, 함께 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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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 가나안 땅을 제비 뽑아 땅 나누어 주는 것을 마친 후에 도피성을 지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20:1-3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가 모세를 시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지정하여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그곳으로 피하게 하여라. 그곳은 죽은 사람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사람을 피하는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를 보면 이미 모세에게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도피성에 대한 지시를 하셨습니다. 민수기 35:9-1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가 앞으로 곧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거든 성읍들 가운데 얼마를 도피성으로 정하여 실수로 사람을 죽게 한 자가 그 곳으로 도피하게 하여라” 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지정하라고 하신 도피성은 우연히, 실수로, 고의가 아니게 사람을 죽인 사람들이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피할 수 있도록 한 성이었습니다. 구약의 시대는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아무리 실수였고 죽이려고 하는 의도가 없었는데 사람을 죽였을 경우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 그 외의 사람들이 죽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경우를 대비하여 보호 받을 수 있는 성이 바로 도피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도피성을 지정하셔서 도피성으로 들어오는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도피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지정하라고 하신 이유와 의미는 우리의 한계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도피성은 실수로 살인한 자를 받아 주고 보호해 주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자르는데 도끼날이 빠져서 곁에 있는 사람을 죽였거나 지붕을 고치다가 기왓장이나 연장을 실수로 떨어트렸는데 밑에 지나가는 사람이 맞아서 죽는 의도하지 않게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이 피할 수 있도록 지정한 곳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 나아가 생각지 않은 실수를 해서 물질적인 손해를 입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어려움을 주었는지 뒤늦게 깨닫지 않습니까? 헛 똑똑이 같은 행동, 말, 결정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지금까지 살면서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지금은 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여전히 연약하고, 실수하고, 후회할 말, 후회할 결정, 후회하는 행동들을 모르고 행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미련하냐면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데 내 생각대로 다 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 힘으로 살아 왔다고 착각하고 살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고, 내가 제일 똑똑해서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고 그리 오래 살지 못하는 짧은 인생을 이 땅에서 사는데 죽음과 나는 상관없는 것처럼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갑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다보면 막다른 골목을 만납니다.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엉뚱한 결과를 당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어려움을 만나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과 문제를 만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내가 한계가 있는 인간이고,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인간이며 결국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일하고 내 힘으로 걷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몸 안에 작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만 들어와도 들어 눕고 쓰러지는 것이 우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잊고 살아서 그렇지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내가 아무리 건강하다고 생각해도,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도 우리는 원래 하나님 없이는 존재 하지 못하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만하게 하나님이 살 수 있는 존재처럼 삽니다.
도피성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살인자는 이 성읍들 가운데 한 곳으로 가서 그 성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사고를 설명하여야 한다”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 나는 알게 모르게 실수하고 죄를 짓는다는 사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알게 하고 고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역사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4: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 우리는 질그릇이다 라고 말합니다. 쉽게 깨지는 쉽게 부서지는 그릇이 질그릇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우리는 우리 안에 보물, 능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예수님,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약한 것, 인간됨을 고백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내 힘으로, 인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십니다. 나도 힘 드는 상황인데 하나님을 먼저, 교회를 먼저, 다른 영혼을 위해 먼저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고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소망을 보게 하시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평강의 마음, 믿음의 마음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약함, 나의 부족함,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하며 내 안에 계신 하나님,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를 주장하시고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주님 내가 주님만 의지합니다. 내가 주님의 도피성으로 달려갑니다.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나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갈 때 나를 강하게 사용하십니다. 나는 약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약함 가운데 시작하심을 기억하며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주 안에 거하는 자로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