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6-7
6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7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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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명령하시고 기다림의 영성을 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다리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이 이것이었습니다. 6절 “사도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무슨 말입니까? “언제 우리나라가 로마의 식민지에서부터 해방될 것입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가 오시면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기대했습니다. 지금 로마의 식민지로 살고 있습니다. 수백년간 나라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평생의 소원은 해방이었습니다. 다윗의 때와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을 보면서 메시야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자 소망을 잃었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많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자 제자들의 생각은 “아 이제 예수님께서 이 나라를 회복시키시려고 하나 보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기대와 원함이 인간적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나라가 회복되고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7절에“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나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내가 관심 갖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림을 명하시는 이유는 첫째, 기다림을 통해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의 차이를 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8절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성령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의 원함과 계획은 제자들이 땅 끝까지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생각은 로마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생각과 계획보다는 내 계획과 내 원함을 앞세우며 살았습니다.
마가복음 10장과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데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의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왕이 되시는 줄 알고 자기들을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 뜻대로 살겠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보다 우리는 나름대로 내 원함과 내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데 제자들은 이스라엘 땅이 회복되고 해방을 얻는 것만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림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은 기다림의 시간들을 통하여 나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깨닫게 하시려고 주시는 시간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대부분 고통스럽습니다. 어렵습니다. 빨리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닫는 것은 그 고난과 고통의 기다림의 시간이 바로 나를 훈련하고 바로 잡아 주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 기다림의 시간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할 때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내려놓고 그 뜻을 깨닫게 하시기를 원하실 때 기다림의 시간을 주십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서 나의 생각을 바꾸시고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고 품게 하소서”
두 번째, 기다림을 주시는 것은 기다림을 통해 함께 무릎을 꿇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1:14 “이들은 모두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동생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썼다”기다림의 시간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함께 기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에 고민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도망하려고 잔머리 굴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언제까지 기도했습니까?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언제에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언제 해결 되지요? 언제 해방 되지요? 언제 부흥하지요? 언제 끝나지요? 언제 시작되지요?”그런 우리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단호하게 대답하십니다.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고 하나님의 때에 행하실 것이다. 너희가 그 시간에 대해서 알려고 애쓰지 말고 너희고 힘쓰고 애써야 할 일은 기도해야 할 일이다” 라고 명하십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언제 부흥시킬 것이냐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제자들이 한 마음으로 모여 기다리며 기도에 힘썼을 때 성령님이 임하셨고 기다리며 기도에 힘썼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림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일에 힘쓸 때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기다림은 분명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길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꼭 필요한 시간에 주십니다. 시편 27:14 “너는 주님을 기다려라.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을 기다려라”기다리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하라고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이 시대에 기다리는 사람, 오래 참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많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명령을 하셨지만 정작 끝까지 마가의 다락방에 남아서 기도한 사람은 120명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리며 기도했던 소수의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듯이 우리 헤이워드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나의 원함과 나의 뜻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인생이 바뀌고 교회가 부흥하며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기쁨의 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바꾸며 기도하며 나갈 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듯이 우리에게 그러한 인생을 바뀌며 교회를 부흥케 하는 온전함을 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