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7-12
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8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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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한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성탄절은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치루어야 할 운명인 우리들, 우리가 먼저 찾지 않고, 구하지 않았는데 우리를 사랑하셔서 먼저 구원의 길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그 대속의 죽음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것을 에베소서 2:8절에 “너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의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받은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받을 자격이 되지 않는 자가 받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한해를 돌아보십시오.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태어난 것, 지금까지 살아온 것, 우리는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깨닫는 자가 있고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에서는 “주께 감사하세 주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시고 더 주시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야고보서 1:17절을 보십시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곧 빛들을 지으신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축복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그 은혜를 알고, 받은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고 기뻐하고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요 구원의 은혜인 성탄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함으로 성탄을 맞으며 성탄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전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성탄의 선물, 구원의 은혜를 주셨는데 그 선물을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성탄의 선물, 구원의 선물은 첫째, 마음이 낮은 자에게 임합니다. 본문에서 천사가 성탄의 기쁨,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예수님의 탄생하신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까? 바로 목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8-9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하나님은 구원자 예수님이 태어난 놀라운 성탄의 소식을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알려 줍니다.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의 목자들은 낭만적인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천한 직업이었고 하층 계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천사가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신 이 중요한 소식을 상식적으로 누구에게 먼저 알려져야 합니까? 그 당시 세계를 다스리는 황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헤롯 왕, 아니면 그 당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안나스, 또는 높은 지도자들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하층인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 구원자, 메시야가 태어났음을 알렸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첫째, 머리로가 아닌 마음,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전해 준 소식, 메시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경배하기 위해서 양들을 들에 놔두고 찾아간 목자들의 모습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메시야가 태어난 소식을 전하자 머리로만 “그렇구나, 그런가보다”라고 머리로만 받지 않고 메시야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진정 마음으로 받고 믿으면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탄생하신 예수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서 그 밤에 베들레헴 성안으로 달려 내려갑니다. 12절에 “너희가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이 말을 믿고 달려 간 것입니다. 들에 치던 양떼들을 놓고 그렇게 하는 것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믿고 받았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그에 합당한 행동이 나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말씀대로 행동합니다. 말씀대로 섬기고 따릅니다.
목자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먼저 전한 것은 그들은 메시야 구원자가 오시기를 진정으로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사실 동방박사들도 메시야 예수가 태어날 것을 큰 별을 보고, 이사야에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먼 길을 유향과 몰약과 황금을 준비하여 예배하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별이 예루살렘까지 인도하자 그들은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당연히 메시야는 왕궁에서 태어날 줄 생각한 것입니다. 왕궁에 헤롯을 만납니다. 유대인의 왕, 메시야로 태어난 아기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헤롯 왕은 놀랍니다. 전혀 기다리지도, 기대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헤롯 왕 곁에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대제사장들, 율법 학자들,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날지 묻습니다. 마태복음 2:4-6절 “왕은 백성의 대제사장들과 율법 교사들을 다 모아 놓고서, 그리스도가 어디에서 태어나실지를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그들이 왕에게 말하였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너 유대 땅에 있는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가운데서 아주 작지가 않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올 것이니, 그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다”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그리스도, 구원자 메시야가 오는 것에 대한 기대가 없었습니다. 기다림도 없었습니다. 영접하고 받아들이고 동방박사들처럼 찾아가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그리스도, 메시야가 태어났다고 분명하게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궁궐 안에 있던 한 사람도 그 태어난 메시야, 그리스도를 만나겠다고, 찾아보겠다고, 먼저 가서 경배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진정 예수님을 구세주로, 그리스도로, 구원자시오 주님으로 마음으로 믿고 예배는 자로 나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기 원합니다. 더 나아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내 삶이 주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아니면 예루살렘 궁전에 헤롯 왕과 함께 있었던 지식적으로만 성경을 알고 메시야를 알았던 대제사장, 율법 교사들처럼 여기가 좋사오니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 구원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으로 믿고 들에 양떼를 내버려 두고 예수님이 태어난 곳을 찾아 달려가 예배할 마음과 믿음의 행동이 있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내가 지니고 있는 양떼들보다, 물질보다, 내 시간, 내 편함보다 우선으로 생각하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섬기고, 말씀 따라 순종할 수 있는 이 시대의 목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