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느헤미야 9:18-22

18. 더욱이, 우리 조상은, 금붙이를 녹여서 송아지 상을 만들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우리의 하나님이다’ 하고 외치고, 주님을 크게 모독하였습니다.
19.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차마 그들을 광야에다가 내다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낮에는 줄곧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20.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슬기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 만나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주셨습니다.
21.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이나 돌보셔서, 그들이 아쉬운 것 없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22.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키셔서, 우리 조상이 시혼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나누어서 변방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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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9:6-18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할 때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 이끌어 내시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고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광야의 길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와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받은 백성, 택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율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의 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목을 뻣뻣하게 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더 나아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리를 인도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엄청난 모독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들을 대하셨습니까? 우리 같으면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사람도 아니라고 내 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19절을 보십시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차마 그들을 광야에다가 내다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낮에는 줄곧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인간적인 기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을 심판하시고, 정죄하시고 내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낮에는 구름기둥을, 밤에는 불기둥을 허락하셨습니다. 20절을 보면 여전히 매일 아침에 만나를 내려 주셨고 그들이 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마시게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본성과 죄성은 내 마음을 상하게 하고, 내게 손해를 끼치고, 나를 모독하고 험담하고 내 비위를 거스린 사람들은 가만두지 않습니다. 정죄와 비난을 합니다.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품고 경계합니다. 힘만 있다면 짓누려고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드러내어 창피를 주려고 합니다. 내 쫓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것들을 베푸셨습니다. 동일한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시고 인도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이나 돌보셔서, 그들이 아쉬운 것 없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돌보셨습니다. 그들이 아쉬운 것이 없도록 채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백성들, 순종하는 백성들,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백성들로 변화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모습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믿는 믿음의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40년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22절을 요단강 건너에 있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전에 있던 여러 땅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키셔서, 우리 조상이 시혼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나누어서 변방으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여전히 사랑받지 못할, 기쁨을 주지 못하는 모습을 가진 백성들에게 그러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1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그들을 불쌍히 보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즉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는 내쳐야 하고, 심판해야 하고,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행동과 모습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고 우리가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이웃에 대해 분노와 미움, 정죄와 원망, 내치고자 하는 마음이 들 일에도 여전히 그에게 온유함으로 대하고, 용납하고, 기다려주고, 채워주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구해야 할 것이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영혼을 대하고, 기도하고, 축복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고 채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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