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골로새서 4:2-6

2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3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
4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6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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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는 세상의 잘못된 가르침과 철학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 붙잡아야 할 바른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해 분명히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이며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우리들은 어떠한 존재인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 골로새서의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4장의 말씀은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결론적인 내용이고 7절부터 마지막 절에는 여러 형제 자매들에게 문안하는 내용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본문 2-6절은 1,2,3 장에 걸쳐 설명했던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결론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고유의 모습이 있습니다. 꽃이 여러 종류가 있지만 꽃의 형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것은 꽃이라고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도 수많은 종류와 모습의 물고기가 있지만 물고기 고유의 특징이 있기에 모습은 달라도 “저것은 물고기다”라고 알아봅니다.

그렇듯이 성도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여지는 고유의 모습과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결론적으로 알려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모습, 보여야 할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삶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성도된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할 첫 번째 모습은 바로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타내야 할 많은 명령들을 3장에서 말했습니다. “위에 것을 생각하라. 땅에 속한 육신의 욕심을 버려라. 분노와 격분과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 옛사람을 버려라.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으리.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 말씀이 풍성하게 하라. 옛 성품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으라”

그 모든 명령을 한 후에 결론적으로 주시는 말씀이 ‘기도에 힘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지만 마음은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힘쓰지 않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결단했다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능력은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에서 오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참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성령님께서 주십니다. 기도할 때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 버려야 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힘쓰고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기도하기 쉬운 시대가 아닙니다. 얼마나 바쁩니까? 정신없이 돌아가는 생활입니다. 항상 바쁜데 일은 끝나지 않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들리는 소리들, 전화, TV, 인터넷, 드라마 등 기도하기에 가장 부적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사단은 믿는 우리에게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교회 봉사도, 예배도 참석하게 하고 성경도 읽고 배우게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만큼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막습니다. 기도만 못하게 하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기도하지 못하는 수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할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새로운 삶에서 강조하지만 그러나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사단에게 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머리에 각인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들은 말씀, 감동 받은 말씀, 행하려고 마음 먹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늘 좌절하고 낙심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라”가 아니라 “기도에 힘쓰라, 기도에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힘쓰지 않고는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듣고, 배우고, 깨달은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힘써 기도하지 않으면 이름뿐인, 형식적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죽은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기도에 힘쓰고 항상 깨어 있을 수 있습니까? 그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2절을 다시 봅니다.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깨어 있으십시오” 먼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기도에 깨어 있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기도에 항상 깨어 있을 수 있습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생명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사람은 먼저 기도하는 삶이 믿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을 때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것만 쳐다보면서 “이것 해 주십시오, 저거 해결해 주십시오” 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감사한 것을 찾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가 터져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삶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순간 순간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뭐가 부족합니까? 그리스도인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기도에 깨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에 가득차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 문을 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하고 두 번째 올바른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명하고 올바른 삶의 목표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자신의 기도제목을 부탁합니다. 3-4절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이 비밀을 나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바울의 기도 제목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로 하여금 전도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 제목을 부탁해 보았을 것입니다. 내 남편을, 내 형제를, 내 친구를 전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기도 부탁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사도 바울이 처한 상황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으로 건강하고 하는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채움 받은 상태였습니까? 아닙니다. 이 때의 상황은 바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처형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현실적으로 필요한 기도 제목이 많았습니다. 빨리 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것, 건강, 안전, 생명의 위협. 얼마나 다급한 기도제목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기도 제목을 뒤로 하고 간수들을 전도하고 있는데 그 전도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빌립보 간수와 가족이 구원 받은 이유였고 로마의 귀족들이 주님께 돌아오고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변한 이유였습니다. 어떻게 바울은 자신의 처한 상황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전도를 위해 기도제목을 부탁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사는 존재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생애 뚜렷한 목적, 달려갈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22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에 가는 길입니다. 거기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 뿐인데 어느 도시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바울과 같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고질병, 수없이 굶고 수없이 맞고 감옥에 갇히고 결국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번도 의식주를 위해서 매달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살집 때문에 고민하고 불평하고 기도제목을 부탁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생의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만 사명을 주셨나요? 하늘나라의 약속을 사도 바울에게만 주셨나요? 아닙니다.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원한 상급, 영원한 천국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것을 목표로 삼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기라” 사도 바울이 의식주를 구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먼저 생각하고 산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설교는 축복입니다. 이 땅에서 잘 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교회가 잘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진정 그리스도인이며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며 살고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의와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한 영혼을 구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 헤이워드 교회가 그러한 교회가 될 것을 간구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질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고, 돈이 있다고 고개를 들고 없다고 고개를 숙이는 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교인. 나로 인해 한 영혼이 세워진다면 무엇보다 기뻐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관계의 중요성을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대하고, 기회를 선용하십시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가느냐가 세월을 아끼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를 잘못하면 그 일로 인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선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누군가 싸우고 다투는 관계에 있으면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복도 놓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삶에 다가오는 모든 기회를 잡으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공평하게 삶의 축복의 기회를 주십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전할 기회, 영적으로 자랄 기회들을 주십니다. 그런 축복을 어떻게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위의 있는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지혜롭게 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지혜가 필요하겠지만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말의 지혜를 강조합니다. 6절입니다.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말에 지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라는 것입니다.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말 때문입니다. 말을 지혜롭게 해야 하는데 첫째, 말을 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은혜롭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수를 던지듯이 말을 던집니다. 빈정거리는 말, 가시가 심긴 말. 똑같은 말을 해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은혜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 그런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고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직분도 받았는데 늘 부정적이고 늘 꼬투리 잡습니다. 비판적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정말 성령 안에 거하면 우리의 말이 벌써 달라지는 것입니다. 은혜롭게 말합니다.

둘째, 소금으로 맛을 내어야 합니다.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라고 했습니다. 소금으로 고르게 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경학자들도 이 말의 뜻을 밝히는데 고생을 했습니다. 몇가지 의미가 있는데 한 가지는 정제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금은 썩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부패된 말을 하지 말고 늘 좋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 맛을 냅니다. 똑같은 말을 해도 기분 좋게 상대를 격려하며 살리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살리고 격려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함께 하면 일할 맛이 납니다. 함께 있고 싶습니다. 영적으로도 용기를 주어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운 것을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꽃은 꽃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피로 값주고 산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영광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사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올바른 목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셋째, 다른 사람과 바르고 좋은 관계를 갖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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