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1:8
8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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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8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렇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의 내용 중에 한구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의 심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언하여 주십니다”개역성경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증인이시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며 섬겼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 그렇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신다고 담대하게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사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혔을 때나 자유로운 몸으로 있을 때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뜨거움과 열심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사랑하고 기도했고 섬겼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고 구원 받은 자의 모습이고 마음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저와 여러분에게 “당신은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성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사도 바울과 같이“나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성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8절의 바울의 고백을 들으면서 웬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삶이 사도바울과 같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심장이 아니라 여전히 내 심장으로, 내 고집으로, 내 감정으로, 내 생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우리 역시도 “내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라는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사도 바울의 과거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혼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기 전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회심하기 전까지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닌 잘못된 자기 의와 의욕, 분노와 살기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잘 알듯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과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닥치는대로 잡아서 감옥에 쳐 넣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만 국한하지 않고 먼 도시에 도망쳐 간 성도들까지 잡아 오기 위해서 대 제사장에게 허락까지 받아 다메섹, 다마스쿠스까지 쫓아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은 하는 일이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빌립 집사를 잡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빌립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 거짓 증인들의 옷이 그의 발 아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8:1절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장 1절을 보면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여러 회당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 달라고 하였다. 그는 도를, 예수를 믿는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묶어서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것이었다”
사울은 마음에 위협과 살기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 죽여 버리겠다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잡아서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로니하게 사울은 철저하게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일들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거역하는 일, 그리스도의 심장이 아닌 악한 사단에 속아서 사단의 악한 마음, 대적하는 마음, 살기가 가득한 마음이었습니다.
사울만 그러합니까? 이 시대에서도 예수를 알고 믿기 전에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다 옳고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로 하나님의 교회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교회를 위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일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요한1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지만 사랑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의 모습은 위협과 살기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미움과 원망과 복수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는 사람인지 사단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 심장으로 뛰고 있는지, 미움과 원망, 시기와 분노로 뛰고 있는지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이 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살기가 등등하며 하나님의 뜻을 착각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울이 변하여 하나님께 진정으로 쓰임 받는 바울이 됩니다. 어떻게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까? 누군가 바울을 설득시켰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 고집, 그 착각, 자신이 옳다고 하는 것 누가 설득하고, 누가 꺾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꺾을 수 있고, 누가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바울로 변하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바울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게 되었습니까? 답은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없애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다마스쿠스
로 살기등등하여 가는 길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강한 빛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 질문을 듣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과 질문에 사울은 그동안 자신이 옳다고 붙들고, 확신하고 있었던 잘못된 삶의 모든 기준과 관점이 다 무너져 버립니다.
하늘에서 들린 예수님의 그 음성과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 대답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그러자 대답이 들립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울이 주님의 그 음성 앞에, 그 빛 앞에 엎드려집니다. 자신의 죄와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이 얼마나 엄청난 죄인지를 보게 됩니다. 자신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을 생각할 때 자신은 용서받지 못할 심판과 멸망을 받아야 할 죄임임을 알았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것조차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그런 사울을 용서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사울을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의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시겠다고 사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용서, 사랑이셨습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놀라운 죄 용서함의 은혜, 사도로 택하여 주신 놀라운 부르심을 받은 후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자신의 잘못과 죄를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놀라운 복음의 사람,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자로 변했습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축복, 주님의 음성과 질문을 들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축복, 잘못된 가치관과 확신이 무너지고 진정 주님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삶,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으로 변화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간절히 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바울이 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변하게 된 다메섹 사건이 사도행전 9장에 나오지만 사도행전 26장을 보면 바울이 헤롯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게 된 다메섹 사건을 간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9장에 나오지 않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셨던 질문을 이렇게 밝힙니다. 사도행전 26:14절을 보면 “그때에 히브리 말로 나에게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하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개역성경에는“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가 고생이니라” 가시덤불, 가시로 된 채찍을 자기 발로 차고 다니면 가시에 찔리고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울이 그런 삶을 살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가시채를 뒷발질한다” 라는 말은 우리말로 말하면 사서 고생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사울은 마음에 가시채를 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위협과 살기를 가지고 사는 삶,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삶, 원망과 불평, 정죄하고 비난하고, 쫓아내고, 잡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울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시채를 마음에 품고 살면 누구 손해입니까? 자기 손해입니다. 자기 마음이 지옥입니다. 불행한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것이 사울의 마음이고 고생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심장, 예수님을 진정 믿고 마음에 모시며 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 아닙니까? 가시채를 발로 차고 사는 삶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그 마음에 모시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의 심장으로 살지 않는 삶을 자세히 보면 가시채를 뒷발질 하며 사는 삶입니다. 마음에 원망의 가시, 정죄의 가시, 정죄, 비난의 가시, 용납하고 용서하고, 살리고 세우는 삶이 아닌 사울과 같이 살기 등등한 마음으로 삽니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 예수의 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축복이고, 그것이 참된 신앙의 삶입니다.
예수의 심장으로 바뀌면 언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전에 마음에 원망이 있고 미움이 있고 그러니까 비꼬는 말, 상처 주는 말, 날카로운 말. 그런데 예수의 사랑이 들어가니까 말이 부드러워지고, 살리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영혼을 살리는 복음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 채울 수 없었고, 회복될 수 없었던 깊은 상처의 웅덩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짐으로 그 사랑이 이제는 흘러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회복시키고, 세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라면 사울이 아닌 예수의 심장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의 심장이 뛰게 할 수 있을까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1:4 “내가 기도할 때마다 간구합니다” 빌립보서 1:11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의 열매로 가득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나는 기도합니다”라고 기도하는 모습이 계속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정말 엎드리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기도하며 엎드렸습니다. 실라와 함께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합니다. 로마 감옥에서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눈이 열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지며 하나님의 찬양과 영광이 되기를 소원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시간 기도하기 원합니다. 내 안에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아니면 혈기등등한 사울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영혼을 살리고자 하는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아니면 혈기와 살기, 원망과 불평, 꼬여있는 사울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예수를 진정 만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더 이상 내 심장이 아닌 예수의 심장이 뛰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마음과 쓴 뿌리들을 뽑아 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나의 마음을 채워주시고 풀어 주시고, 넓혀주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의 삶, 십자가의 삶을 살기를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