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7:20-26

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거센 바람만이 심하게 불었으므로, 우리는 살아 남으리라는 희망을 점점 잃었다.
21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에 바울이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은 내 말을 듣고, 크레타에서 출항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이런 재난과 손실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23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5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26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으로 밀려가 닿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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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태우고 로마로 출항한 배는 큰 풍랑을 만납니다. 몇 시간, 하루, 이틀이 아닌 몇일간을 큰 풍랑으로 인해 표류하게 되었고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 배의 모든 물건들과 필요한 기구들까지 버린 상태였지만 여전히 위험하게 배가 떠 밀려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파선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20절에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거센 바람만이 심하게 불었으므로, 우리는 살아 남으리라는 희망을 점점 잃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희망을 점점 잃을 때가 언제입니까?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 시간이 지나는데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지거나 힘든 상황이 계속 될 때 절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애를 써보고 힘도 써봅니다. 나름대로 상황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참아도 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대로, 내가 기대했던 시간 안에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낙심하고 절망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상황이나 하늘을 탓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보통 세상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절망 속에서 소망을 놓지 않고, 절망과 원망이 아닌 담대함과 격려함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배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절망의 상황에 있는데 같은 배, 같은 상황에 있는 바울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22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이 배만 잃을 뿐,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바울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배 안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한 말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똑같은 상황과 형편 속에서 든든히 서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내라고 소망의 말을 담대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23-24절입니다.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미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고 황제 앞에 반드시 서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배에 너와 함께 탄 사람들도 다 살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폭풍우가 치고 풍랑이 불어서 배가 파선 될거라고 다들 걱정해도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로마까지 가야 하는 사명을 받았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황제 앞에 서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액션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이 수많은 위험한 상황을 만나도 우리는 그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명자는 사명을 다할 때까지 죽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담대한 것입니다. 자신 때문에 함께 배에 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에 탄 276명 모두가 죽을 것이라고 다 두려워하고 있는데 바울은 담대하게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그렇게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사고나 근거 없는 호언장담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전 읽었던 사도행전 27:23-24절 “바로 지난밤에, 나의 주님이시요 내가 섬기는 분이신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는다” 라고 바울이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두개가 아니라 수많은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 주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와 주겠다, 감당치 못할 시험을 너에게 주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구원을 베푸는 전능자다”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앞에 우리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절망 속에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가운데, 죽을 상황에서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라는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절망 가운데 있는 자들을 소망으로 이끄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사도 바울과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어제 함께 나누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풍랑이 일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배가 출항하기 전에 사도행전 27:10절 “여러분, 내가 보기에, 지금 항해를 하다가는 재난을 당할 것 같은데, 짐과 배의 손실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까지도 잃을지 모릅니다” 항해를 늦추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7:11절을 보면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로마로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사실 백부장으로서는 죄수로 잡혀 가는 바울의 말보다 배와 바다에 대해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이성과 경험과 상황을 따라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더 이상 현실과 상황과 경험과 이성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우선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고 매주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도 세상의 모습 그대로 세상의 경험과 이성과 현실을 따라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을 우선으로 살아야 하는데 여전히 세상의 기준과 방법이 우선이 되어 살아갑니다. 지금 내가 내리는 판단의 기준이 세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믿음이 앞섭니까? 세상의 이치로 판단합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처음에는 맞는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27:13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선장의 말을 듣고 출항을 했더니 “때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오므로, 그들은 뜻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닻을 올리고서, 크레타 해안에 바싹 붙어서 항해하였다” 처음에는 남풍이 붑니다. 잘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내 생각이, 내 계획이 맞았어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조금 더 지나자 감당할 수 없는 풍랑을 만납니다. “이게 아니구나” 뒤늦게 후회합니다. 처음에는 세상의 방법이 맞는 것 같고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적인 상황에서 말씀대로 믿음으로 선택할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발을 디딜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여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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