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4:3-4

3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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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말세에 나타날 현상들, 즉 죄와 타락한 신앙의 모습을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인 디모데전후서를 통하여 알려주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의 어려운 때에 나타날 19가지의 증상들,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과 돈을 더 사랑하고, 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불쌍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비방, 절제, 감사함이 없고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참된 경건의 변화됨의 모습과 열매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다시 한번 타락한 신앙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3절입니다.“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때가 이르면’ 이라는 말은 3:1절에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것입니다” 라고 하는 말세 즉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3절에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라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 밖의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즉 저와 여러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건전한 교훈, 즉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고, 하지 말라고 하시는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이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한번 돌아보십시오. 지금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과거에 신앙생활하던 옛 성도들보다 더 하나님을 두려움과 경외함으로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며, 순종하며,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까? 아닌 것 같습니까?

제가 어릴적부터 시골마을 감리 교회를 다니며 교회의 성도님들, 집사님들, 권사님, 장로님들을 보아왔고 어머님의 신앙을 봐왔습니다. 주일 성수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 동네에서 교회까지 걸어서 최소한 30-40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더 일찍 갈 수 있는 꽁꽁 언 개울을 건너서 같습니다. 동네에서 같은 교회를 다니시는 어른들이 주일예배를 빠지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 직분자들은 말할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모습들을 봐왔기에 어린 저 역시도 십계명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운 말씀,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작은 일만 있으면 주일예배 빠지는 것 고민없이 빠집니다. 조금만 아프거나 몸이 피곤하다고 빠지는 것 대수롭게 여깁니다. 성도들끼리 그럴 수 있지라는 분위기입니다. 헌금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목회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에는 목회자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존중하며 목회자의 권면이나 부탁에 대해서는 거의 무조건적인 순종을 보였습니다.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목회자 보다 내 생각과 내가 더 낫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이래야 합니다. 저래야 합니다” 라고 가르치려고 합니다. 권면하는 말도 내 상황, 내 기분, 내 생각을 다 고려해서 내가 하고프고, 할 수 있는 것만 골라서 합니다.

왜 성도들이 바른 교훈,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점점 더 따르지 않습니까? 그것은 결국 하나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인본주의 사상으로 치달아 가고 있습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인본주이란 “무엇보다 자신이 중요하다” 라는 사상입니다. 즉 인간의 능력, 권리, 자아 실현, 자기 생각과 행복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사상입니다.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인본주의 사상은 신본주의 사상, 즉 하나님 우선의 삶,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뜻과 명령,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신앙이 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다 내가 먼저가 되는 것이 괜챦다는 마음을 갖게 한 것입니다.

내가 우선이 되고, 내 행복, 내 권리, 내 편함이 우선이 되기에 하나님의 바른 교훈을 받고 따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명령일지라도 내가 따르고 싶지 않은 것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들, 내가 불편한 것들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일지라도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타나는 현상이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는 것입니다. 3절을 다시 봅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말세에 나타날 타락한 성도들, 겉으로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나타날 현상은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스승, 즉 목회자와 그런 교회를 찾아다닌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성장을 중점을 두는 목회자들 가운데 설교에 대해 절대 죄에 대한 설교, 성도를 책망하는 설교를 하지 말고 축복의 설교, 웃음을 주는 설교, 힘을 주는 설교만을 하라고 가르치는 책이나 세미나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대형 교회인 텍사스 레이크우드 교회가 그러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특정 교회와 목사를 비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지만 담임 목사인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인터뷰나 설교, 그리고 쓴 책들을 보면 정말 위험합니다. 예수 외에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있는 몰몬교도 진정한 기독교라고 말하며 그들의 신학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설교의 초점은 축복입니다. 번영신학입니다. 죄와 회개, 지옥에 대한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상처와 아픔과 지옥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기에 더 이상 사람들에게 절망과 상처를 주기보다 희망과 힘, 격려하는 설교만을 한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 한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려고 할 때 고난과 핍박이 있음을 알고 그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나는 죽고 예수님이 드러나는 믿음으로 살아가라는 도전의 말씀을 원치 않습니다. 말세에 점점 더 나의 귀를 즐겁게 하고,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합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하는 말이나 설교, 사람을 싫어합니다. 내가 어떻든 내 편이 되는 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죄성이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말세에 더욱 우리가 분별하여 어떠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분별해야 합니다. 나의 죄를 책망하는 바른 교훈, 힘들더라도 따라야 할 하나님의 명령에 거부하고 내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 내가 듣고 싶어하는 소리, 내 욕심의 기분을 맞추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망하게 됩니다.

열왕기상을 보면 아합 왕이라는 악한 이스라엘 왕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이 돌이킬 수 있도록 그의 죄를 책망하는 여러 선지자를 보내시어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신이심을 보여 주는 여러 기적을 보여 주십니다. 그런 기회를 여러번 주셨지만 아합 왕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결국 열왕기상 22장을 보면 아합왕이 다스리는 북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연합하여 아람 군대와 전쟁을 하러 나갈 때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 전쟁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실지 물어 볼 선지자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할 때 아합 왕이 거느렸던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던 시드기야를 비롯하여 400여명의 선지자라고 하는 자들이 철로 뿔을 만들어 가지고 나와 여호와의 말씀이 왕이 이것들로 아람 군대를 찔러 진멸하는 승리를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 미가야는 이번 전쟁에 나가면 죽음을 당할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자 아합 왕은 미가야 선지자는 늘 자신에게 기분 나쁜 말만 전한다고 감옥에 던져 넣으라고 하고 승리를 얻을 것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한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의 말을 듣고 전쟁에 나갔다가 미가야의 예언대로 전쟁에 패하고 죽음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세에 우리가 진리를 듣지 않고, 건전한 교훈을 받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귀를 즐겁게 하는 말, 죄를 죄라고 말하지 않고 괜챦다고 덮어주는 말, 나를 책망하지 않고 기분 좋게 하는 말만 들으려고 하고 하다가는 결국 사단의 속임수에 스스로 속아서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바르게 들을 수 있는 귀, 우리의 죄와 잘못을 책망하고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프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귀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내 귀를 즐겁게 하고 좋게 하는 말이 아닌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정신 차리게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영적인 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둠과 속임으로 가득한 이 말세에 바른 교훈을 따라 진리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을 지켜 주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과 면류관, 하늘의 상을 받는 자로 설수 있도록 영적인 귀로 열려 있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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