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0:3-10
3 어느 날 오후 세 시쯤에, 그는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똑똑히 보았다. 그가 보니, 천사가 자기에게로 들어와서, “고넬료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4 고넬료가 천사를 주시하여 보고, 두려워서 물었다. “천사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다.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5 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6 그는 무두장이인 시몬의 집에 묵고 있는데, 그 집은 바닷가에 있다.”
7 그에게 말하던 천사가 떠났을 때에,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서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서,
8 모든 일을 이야기해 주고, 그들을 욥바로 보냈다.
9 이튿날 저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10 그는 배가 고파서, 무엇을 좀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에, 베드로는 황홀경에 빠져 들어갔다.
11 그는,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땅으로 드리워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12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골고루 들어 있었다.
13 그 때에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먹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14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15 그랬더니 두 번째로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뒤에,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서 올라갔다.
17 베드로가, 자기가 본 환상이 대체 무슨 뜻일까 하면서, 속으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서, 문 앞에 다가섰다.
18 그들은 큰 소리로 베드로라는 시몬이 여기에 묵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19 베드로가 그 환상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20 일어나서 내려가거라. 그들은 내가 보낸 사람들이니,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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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은 무척 중요한 특별한 의미가 담긴 장입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분명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함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수 천 명의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어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만 머물렀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끼리가 좋사오니 라는 마음으로 매일 모이고 뭉치고 믿는 자들의 예배만으로 만족하려고 하자 하나님께서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를 통하여, 그리고 사울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성에서 믿는 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믿는 성도들을 흩으십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7장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지만 가까운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빌립이 갔던 곳이 사마리아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 가장 멀리 흩어진 곳이 다메섹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약 10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스라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세상 끝까지 가서, 즉 이방인들에게 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시켜 세우신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우리 표현으로 하면 2세입니다. 다소사람 바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 이민 와서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를 2세라고 하지 않습니까? 얼굴과 모습은 한국인이지만 미국에서 자랐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1세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세운 이유가 바로 전통 유대인의 고정 관념을 가진 사람은 이방인의 사역을 최대한으로, 최적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통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고정 관념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원받는 백성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 밖에는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개처럼 여긴 것입니다. 그러한 고정 관념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유대인 성도들이 버리지 못하고 온 세계를 향한, 모든 이방인들,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행전 10장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이 아닌 온 세계를 향해 나가는 엄청난 사건을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는 사건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 할 때 그 일이 엄청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십니다. 한 사람의 순종과, 한 사람의 변화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베드로, 로마의 식민지로 있는 이스라엘 작은 나라, 갈릴리 시골 어촌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라는 80세 노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 모세의 순종을 통하여 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시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에스더라는 힘없는 한 여인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헌신을 통하여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헌신하며 순종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나 혼자 순종한다고, 나 혼자 헌신한다고, 나 혼자 기도한다고 뭐 되겠는가? 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가정을, 교회를, 사회를 이 나라를 변화 시키십니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나이가 어리다. 가진 것이 없다고, 힘이 없다, 능력이 없다”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6-28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미련한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택하여 일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특기입니다. 나같이 부족한 자, 연약한 자의 헌신과 순종을 통하여 골리앗을 넘어트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작은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행하기 원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약하고 미련할지라도 나 하나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하면 악독한 핍박자 사울을 바울로 사용하신 하나님, 어촌에서 고기만 잡던 베드로를 통하여 교회의 기둥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어느 날 오후 세 시쯤에, 그는 환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똑똑히 보았다. 그가 보니, 천사가 자기에게로 들어와서, “고넬료야!” 하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고넬료가 천사를 주시하여 보고, 두려워서 물었다. “천사님, 무슨 일입니까?” 천사가 대답하였다.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천사를 보내 고넬료에게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데리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말씀하셨을까요?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고넬료는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어제 우리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2절을 보면 “그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부르라고 하신 때는 고넬료가 기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같은 시간 하나님께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이방인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기 위해 지붕 위에 있는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 주실 때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저들이 길을 가다가, 욥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때는 오정쯤이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과 음성을 들었을 때도 기도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의 변화는 무릎 꿇는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이것 주십시오. 저것 해 주십시오” 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는 시간이기에 나는 작아지고 내 삶에 하나님이 커 지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 내 생각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시기 시작하고, 문제는 작게 보이고 하나님이 크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내 마음이 변하고 문제를 이길 힘과 지혜와 담대함, 그리고 평강이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시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좋아하는 사람은 교회는 열심히 다니지만, 나름대로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하지만 기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열심은 결국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내 생각, 내 방법으로 결국 사단이 기뻐하는 돌아다니면서 교회와 성도들의 잘못된 점, 비판, 원망을 하여 교회를 힘들게 하고 하나됨을 깨트리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열심히 섬긴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늘 깨어짐, 다툼, 상처, 어려움을 만듭니다. 교회를 힘들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나를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됨, 구원하심, 선하신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렇기에 그렇게 기도하는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하여 복음이 세상 끝까지 나가는 위대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변화와 부흥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베드로와 고넬료와 같은 기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가 변화되고 부흥하며, 하나님의 뜻하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변화와 역사는 기도할 때 시작됩니다. 더 나아가 변화와 하나님의 역사는 내 고정 관념을 내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사도행전 10:9-16절을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는데 환상을 봅니다. 배가 고픈데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옵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믿는, 먹을 수 없는 짐승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그 부정한 것들을 먹으라고 명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베드로는 14절에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말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15절에 “하나님께서 깨끗하다고 한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아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먹어라” 라고 명하시는데 베드로는 “그것은 부정해서 먹지 못하겠습니다”라고 거절합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베드로의 고정관념,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세 번이나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베드로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음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 앞에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을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내 삶에 깊이 뿌리박은 고정관념을 바꾸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베드로도 기도하는 중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자기가 가지고 있던 고정 관념을 바로 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 환상을 보고 내려 왔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고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뜻을 깨닫고 자기의 고정관념을 깨고 그들을 따라가 고넬료와 그 가정에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정통 유대인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습니다. 개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나갑니다. 사도행전 10:28 “베드로가 말하였다.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부정하다거나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나를 부르러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반대하지 않고 왔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은 우리만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관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 이스라엘 성도들이 이방인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베드로와 유대인들이 가진 이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하나님께서는 내려놓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지금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세운, 사람의 기준으로 세운 선입관과 내 성격과, 내 전통과, 내 취향에 의해 세운 고정관념들을 내려놓기 원하십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았다면 이방의 선교가 시작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취향, 내 고집, 내가 옳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내려 놓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는 것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중대장입니다. 장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를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불러 오라고 명합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식민지의 어부출신입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왔을 때 고넬료는 25절에 “베드로가 들어오니 마중 나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자신과 비교해서 보잘 것 없는, 내가 명령하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지위, 자신의 자존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눈치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내 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아래 내려놓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주님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여전히 내 고집, 내 생각, 내가 옳다고 믿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와 같이 내 생각, 내 기준, 내 고정관념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순종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말에 다들 동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원하신다는 말씀에도 고개를 끄덕이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내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내 사람 아닌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에 머물러 있던 복음을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하여 시작하신 것처럼 내가 나의 고정관념, 내 것으로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껏 사용하시게 됩니다. 바꾸면 바뀝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베드로, 고넬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