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3:1-6
1 그러므로 우리는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하고,
2 우리의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여러분에게로 보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여,
3 아무도 이러한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4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장차 우리가 환난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미리 말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고, 여러분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5 그러므로 내가 참다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보려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유혹하는 자가 여러분을 유혹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6 그런데 지금 디모데가 여러분에게서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또 여러분이 우리를 늘 좋게 생각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러분을 간절히 보고 싶어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한다고 전하여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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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와서 전한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결단한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덤벼드는 극단의 유대인들 때문에 그 데살로니가에 오래 있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남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십자가의 복음, 예수가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구세주와 주님이라는 진리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심한 핍박과 더 나아가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의 비난과 조롱, 세상의 문화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떠나 왔으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핍박 때문에 믿음을 포기 하지 않을지, 혹은 흩어지지 않을지, 교회가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살피고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에 보냅니다. 그것이 1-2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테네에 남아 있기로 하고, 우리의 형제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여러분에게로 보냈습니다”
디모데를 보낸 이유를 2절 후반과 3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여러분을 굳건하게 하고, 여러분의 믿음을 격려하여, 아무도 이러한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우리는 이런 환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낸 이유를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도록 믿음을 굳건하게 세우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깨달아야 할 중요한 부분이 이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이유,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기도한 것은 환난과 어려움을 해결하고 없애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인간적으로 본능적으로 원하는 것은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고난과 어려움, 문제가 있다면 빨리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미신과 다른 종교들은 고난 자체를 없게 해달라고, 고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고난과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는 고난은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심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히브리서 5장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고난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고난이 없으면 부활도, 영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녀들이 고난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듯이 고난을 잘 통과한 자녀들이 성숙해집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채색옷만을 입혔습니다. 고생이라는 것은 모르게 키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고난의 자리로 인도했습니다. 그 고난 가운데 믿음을 연단시키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고난을 통과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나라와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까지 구원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 사명을 감당하는 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마음과 뜻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난 가운데 있다면 고난을 피하게, 고난을 없애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고난을 잘 견디고 감당할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만 의지하는 믿음이 세워지기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하게 통과해 나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듯이요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마음으로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지만 그들이 어떻게 고난을 감당하고 있는지 마음을 졸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참다 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보려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유혹하는 자가 여러분을 유혹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디모데가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그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그리스도를 향한 소망으로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지금 디모데가 여러분에게서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8절을 개역성경으로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이 고난당하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을 믿음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가슴 아파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일은 고난이 사라지고, 일이 잘되고, 문제가 해결됨 때문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키는 인내와, 그 고난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의 모습, 말씀대로 순종하는 모습으로 인해 기뻐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난 중에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주변의 영혼들도 고난 중에 담대하게 믿음을 감당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