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3:10-12
10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11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냈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박해에서 나를 건져내셨습니다.
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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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에 나타날 죄악 된 현상들과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진정한 경건의 능력,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과 성품이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며 디모데와 성도된 우리들에게 말세인 어두운 시대에 참된 신앙과 경건의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10-11절에 자신이 그러한 참된 신앙과 경건의 삶을 살아가면서 받은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나는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냈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박해에서 나를 건져내셨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을 받은 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후 하나님의 말씀과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면서 박해와 고난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바울이 예수 믿은 후부터 1,2,3차 선교를 감당할 때 종교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더 나아가 이방인들에게 수많은 어려움을 당한 것을 압니다. 시기와 비난, 더 나아가 잡힘과 매 맞음, 그리고 감옥에 갇히는 핍박을 받았습니다. 바울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던 성도들과 교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은 왜 고난과 박해를 당했습니까?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잘못된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즉 죄 용서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며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을 세상은 거부하고 더 나아가 핍박합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당합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7절에 이렇게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예수님이 알려 주시고 따르라고 하신 말씀이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하는 말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이 세상의 가르침, 세상의 방법, 세상의 가치관과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 즉 예수 안의 삶과 예수 밖의 삶은 양극을 이룹니다. 하나님과 세상, 거룩함과 더러움, 의와 불의, 선과 악. 우리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예수 안에 거하는 삶,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은 나를 죽이는 삶, 하나님 우선의 삶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살리고, 내가 우선되는 삶입니다. 세상은 내 감정, 내 이익, 내 원함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 안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의 삶은 이 땅에서 더 많이 모으고, 누리고, 나의 만족과 성취를 위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은 이 땅에서 희생하고 하늘에 상과 보화를 쌓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그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 죄악이요, 그 죄로 인해 영원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알리는 삶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누가 나의 죄를 지적하고, 드러내면 받아 들이고 회개하는 것이 아닌 거부하고 더 나아가 대적합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일이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에게 사로 잡혀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다는 것, 더 나아가 예수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 받게 한다는 것은 사단을 대항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사단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방해하고 위협하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을 어떻게 하든, 어떤 방법을 통해서는 막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을 통하여 거부하고, 핍박하고, 막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1,2,3차 선교를 했을 때 유대인들, 종교 지도자들, 혹은 이방인의 리더들, 도시의 자영업자들,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바울을 위협하고, 핍박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 왔을 때도 얼마나 큰 핍박이 있었습니까? 많은 선교사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믿는 자들이 핍박을 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핍박을 당했습니다. 조금 더 좁게는 예수를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가정에서 핍박을 많이 당했습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약자였던 여자들이 남편에게 맞으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왜 주일에 교회 나가느냐? 왜 허구한 날 교회에 가서 우냐? 왜 교회에 돈을 바치냐? 왜 제사를 안지내느냐? 왜 십일조를 드리냐?”시댁에 욕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며 어렵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이나 한국은 예전과 달리 그렇게 모질게 핍박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당하기 보다는 안타깝지만 조롱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핍박받을 만큼, 즉 말씀대로 살 때 치루어야 할 희생을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이나 지금이나 예수 안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핍박을 받고 살아갑니다. 자신을 죽이는 희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나의 편함을 내려 놓고, 하나됨을 위해, 주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인내하며 살아갑니다. 사단의 공격을 이겨내기 위해 기도의 희생과 수고를 감내합니다.
경건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과 힘듬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한 고난과 핍박을 받았기에 우리들을 향하여 12절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과 박해를 디모데 역시 겪었고 어떻게 고난과 박해를 감당했는지 10-11절에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나의 가르침과 행동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따르며,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내가 겪은 박해와 고난을 함께 겪었습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감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1절 후반절에 바울의 고백입니다. “나는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냈고, 주님께서는 그 모든 박해에서 나를 건져내셨습니다”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박해를 견디어 냈고, 또한 주님께서 그 모든 박해에서 자신을 건져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동족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 했고, 감옥에 갇히는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러할 때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견디어 냈었고 그러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건지어 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에 힘들고 어려울찌라도 인내하며 사랑과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우리가 진정 경건의 삶, 즉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 복음을 전하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때 고난과 어려움, 사단의 공격과 위협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할 때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믿음으로 견디고 인내하심속에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손길을 간구하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 그리고 구원의 손길로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쳐 주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