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3:1-5

1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3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5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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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5절의 말씀은 말세 즉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예수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이 가까웠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보일 죄악들의 모습에 대해 1절부터 연결되어 알려 주는 19가지 죄악 가운데 한가지의 모습입니다. 1절을 보면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라고 말세가 되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더욱 어려운 때가 된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하신 뜻과 명령과 삶의 모습에서 벗어난 죄악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말세에 사람들이 보일 죄악된 모습이 무엇인지를 나열합니다.

그것이 2-4절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이러한 죄에 대해서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간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죄가 말세에만 나타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에 이러한 죄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세가 가까이 올수록 더욱 그 죄악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돈을 사랑합니다. 이전보다 감사할 줄 모르고,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 행하는 일들이 옳다고 교만하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5절의 말씀은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받고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2-4절의 죄악들은 어떻게 보면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더욱 나타나는 죄된 현상이지만 5절의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서는 안되는 죄된 모습을 알려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개역성경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지만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를 향한 말씀이겠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겠습니까? 믿는 자들에게 하는 말씀이겠습니까? 분명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경건이 무엇입니까? 영어로는 Godliness입니다. 헬라어로는 ‘유세비아’ 라고 되어 있는데 그 뜻을 해석하면 공경심과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대하고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행함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태도 그리고 그런 태도에서 나오는 행동 양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험함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경건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이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주일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일 것입니다. 교회에 가서 찬양하고, 헌금을 드리며, 기도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로 본다면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경외한다는 외적인 표현이었습니다.

5절에 “겉으로 경건하게 보이나”“경건의 모양은 있으나”라는 말은 이러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겉으로는 경건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양이나 짐승을 드려 번제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제사를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사야서 29:13절에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참된 경건, 즉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과 진정성이 없이 겉모양으로만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인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경건의 모양” 과 “경건의 능력” 이라는 말로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대조를 이룹니다. 말세에,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 가운데, 교회 안에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는 진정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의 사람인지, 진정 그 경건함을 드러내는 사람이니 돌아보고, 분별하고, 참된 경건의 사람으로 말세를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그것은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외적으로 종교적인 모습을 갖추었지만, 그 삶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입니다. 예배, 기도, 봉사 등의 형식적인 행위는 하지만, 실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죄를 고집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경건함의 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5절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를 영어성경 (GOD’S WORD Translation) 에는 “They will not let its power change them.”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변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경건하게 보이는 것만을 원하지 경건의 능력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거부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거부할까요? 그것이 2-4절에 나오는 19가지의 죄악을 붙들고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의 쾌락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자기와 돈과 쾌락을 포기할 의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겸손하고, 순종하고, 절제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럼 왜 겉으로 경건하게 보이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디모데전서 6:5절에서 우리가 이미 함께 나누었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 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 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기도를 하루 세 번씩 하고, 금식을 일주일에 두 번씩 하고, 예배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동기였습니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교만함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동기였습니다. 그렇기에 기도할 때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서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바리새인이 기도한 기도의 내용이 누가복음 18:11-12절에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참된 경건의 능력, 즉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기도함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긍휼한 마음, 겸손함으로 영혼을 섬기는 마음, 내가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베푸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오는 참된 변화, 성령의 역사로 인해 죄를 이기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변화, 나를 죽이고 말씀을 따르는 믿음의 순종함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이러한 겉모습으로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 경건의 능력, 성령의 열매, 삶의 변화를 보이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명하시는 명령이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입니다. 겉모양만 경건한 형식적인 종교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을 뒤집어서 말한다면 “진정한 경건의 모습과 능력과 변화와 성령의 열매가 있는 성도가 되라”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세에 어려운 때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세에,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참된 경건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참된 변화와 열매가 있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경건과 변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힘을 주셨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3절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나 자신, 돈을 사랑하고자 하는 유혹, 교만함, 낙심, 미움 등의 죄를 이길 능력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으로 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 변화와 열매와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건에 이를 수 있는 능력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4:7절에 “오직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단련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그 부르심과 택하심의 뜻을 분명히 알고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디도서 2:11-12절에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의 말씀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아 나의 신앙이 형식적인 신앙이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듣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변화되는 삶, 죄악을 이기고,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는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건 즉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겉모양만 있는 껍데기 신앙, 나의 의를 드러내는 정죄하는 교만하고 가식적인 신앙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말씀이 이루어지는 진실된 능력 있는 신앙으로 변화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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