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2:1-6

1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 싸울 준비를 하고 요단강을 건너 사본으로 와서, 입다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암몬 자손을 치러 건너갈 때에 우리를 불러 같이 가지 않았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같이 불태워 버리겠다.”
2 그러자 입다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힘겹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는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하여 주려고 하지 않았다.
3 너희가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목숨을 걸고 암몬 자손에게 쳐들어가니, 주님께서는 그들을 나의 손에 넘겨주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 너희가 이렇게 올라와서 나를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느냐?”
4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아,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과 싸워 무찔렀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평소에 늘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다!” 하고 말하였다.)
5 길르앗 사람들은 에브라임 사람을 앞질러서 요단 강 나루를 차지하였다. 도망치는 에브라임 사람이 강을 건너가게 해 달라고 하면, 길르앗 사람들은 그에게 에브라임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가 에브라임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6 그에게 쉬볼렛이라는 말을 발음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시볼렛이라고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들이 그를 붙들어 요단 강 나루터에서 죽였다. 이렇게 하여 그 때에 죽은 에브라임 사람의 수는 사만 이천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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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사사 입다가 이스라엘의 길르앗 사람들과 함께 암몬 족속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위 아래로 요단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의 오른쪽 즉 서북쪽 땅을 이야기 합니다. 길르앗 사람들이 18년 동안이나 암몬 사람들이 18년 동안 매번 침략을 당하여 곡식과 재물들을 약탈당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길르앗 땅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몰살시키고 차지하려는 암몬 족속과 전쟁에서 사사 입다를 불러 기적적으로 물리치고 몰아냈습니다.

그런 사건 후에 1절을 보면 요단강 건너편에 지역에 살고 있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과 전쟁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옵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 싸울 준비를 하고 요단강을 건너 사본으로 와서 입다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암몬 자손을 치러 건너갈 때에 우리를 불러 같이 가지 않았느냐? 우리가 너와 네 집을 같이 불태워버리겠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전쟁을 하겠다고 온 것은 암몬 족속을 함께 물리치겠다고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에 입다와 이스라엘 족속인 길르앗에 거하는 지파들과 전쟁을 하겠다고 온 것입니다.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과 전쟁하겠다는 이유는 “왜 암몬족속과 전쟁할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2-3절의 입다의 대답을 보면 에브라임 지파의 말은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입다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힘겹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는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하여 주려고 하지 않았다. 너희가 구하러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내가 목숨을 걸고 암몬 자손에게 쳐들어가니 주님께서는 그들을 나의 손에 넘겨주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 너희가 이렇게 올라와서 나를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느냐?”에브라임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온 것은 암몬 족속이 물러간 틈을 타서 자신들이 길르앗을 지배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사사기 8장을 보면 사사기 기드온이 미디안의 13만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했을 때에 항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8:1 “그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장군계서는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실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하니” 그때 에브라임 지파는 함께 미디안 군대와 싸웠습니다. 도망치는 미디안 군대를 기드온의 명령에 따라 싸워서 미디안의 군대장관인 오렙과 스엡을 죽이는 공도 세웠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항의를 했던 것은 자신들이 기드온의 지파인 므낫세 지파보다 더 큰 지파인데 자존심 때문에 항의했던 것입니다. 자존심을 위한 항의였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의 마음을 파악하고 “당신들이 미디안 군대의 우두머리 장수들을 죽였으니 당신들이 이 전쟁의 주역이다” 라고 자신을 낮추고 에브라임을 높여주자 노여움이 풀어져서 일이 해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암몬과의 전쟁을 앞두고 에브라임 지파에게 도움을 청했었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기드온을 찾아와 하는 말은 전에 기드온에게 했던 단지 항의를 위한 항의, 자신들의 자존심을 위한 항의가 아니라 길르앗 땅이 암몬족속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었는데 이제는 자신들이 길르앗 땅을 차지하겠다고 쳐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을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셨습니다. 각 지파에게 땅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는 하나님을 믿는 한 나라, 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각 족속과 가정에게 땅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 땅은 잠시 사고 팔수는 있지만 다른 가족, 다른 지파가 소유하거나 지배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가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 땅, 즉 므낫세, 갓, 르우벤 지파의 땅을 차지하겠다고 전쟁을 하러 몰려 온 것입니다. 같은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형제 지파에게 주신 땅을 내 땅으로 삼겠다고 형제 지파를 죽이겠다고 칼과 창을 들고 쳐들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부패와 타락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한 백성이요 한 형제인 입다와 이스라엘 지파를 쳐서 그 땅을 빼앗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악한 죄성이 있습니다. 성령의 법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주 안에서 늘 그런 죄악된 모습, 악한 모습, 욕심을 벗어 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지 않으면 에브라임과 같이 하나님 안에 우리가 한 가족이요 한 형제 자매를 죽이겠다고 좇아오는 모습과 같습니다.

에브라임이 요단강을 건너와 싸우겠다고 했을 때 사사 입다는 과연 에브라임과 싸워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브라임과의 싸움은 같은 백성들과의 싸움입니다. 잘못하면 이스라엘을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입다는 에브라임과 전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습니다. 입다가 전쟁을 감행한 것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분명한 명령인 각 지파에 주신 땅과 기업을 인정하지 않고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상대방이 싸워야 할 대상인지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할 대상인지 잘 구별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싸우면 안되는 자기편과 싸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싸워야 할 적인데 타협다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입다가 에브라임이 비록 12지파 중에 한 지파였지만, 같은 백성이었지만 이 상황에서는 싸워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12:3절을 보면 “주님께서 그들을, 암몬 자손을 나의 손에 넘겨 주셨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 너희가 이렇게 올라와서 나를 대항하여 싸우려고 하느냐?”이 말은 지금 에브라임 족속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문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4절에 “에브라임 사람들은 평소에 늘 길르앗 사람들을 보고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친 자들이요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속한 자들이다. 라고 말하였다”이 말은 길르앗에 사는 지파는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들의 주장이 일시적인 감정이나 오해나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선을 넘는 악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승리, 하나님께서 주신 땅,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백성을 인정하지 않고 길르앗 사람 전체를 내쫓고 그 땅을 지배하겠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일이기에 넘어가고 비유 맞추어야 할 일이 아닌 응징해야 할 일이기에 전쟁을 한 것입니다.

입다가 길르앗 사람들을 모아 요단강을 건너온 4만명의 에브라임 사람들과 전쟁을 했습니다. 결과 길르앗의 승리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전쟁에 져서 요단강을 건너서 도망할 때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이 요단강 나루를 먼저 차지하여 강을 건너려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하여 처단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 전체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요단강을 건너온 에브라임 사람들만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싸워 승리해 4만2천명을 죽였습니다. 그 기세라면 요단강을 건너 에브라임 땅을 차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에브라임 족속 전체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단강을 건너온 사람들만 철저히 골라내서 응징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요단강을 건너온 자들은 하나님의 경계를 넘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땅의 경계선을 옮기는 것을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지경에 함부로 뛰어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입다가 도망친 에브라임 사람들을 추격하겠다고 요단 강을 건너가서 에브라임 전체와 전쟁을 벌인다면 그 역시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싸울 때와 멈출 때를 분별했습니다.

우리는 감정대로 싸우면 안됩니다. 감정대로 싸우면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선을 넘어서 지나치게 보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입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선 안에서는 철저하게 죄를 응징했지만 결코 그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절대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범위 안에서만 철저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악을 악으로 갚은 경우를 많이 목격합니다. 누가 나에게 악을 행하면 나도 그 사람에게 악으로 대항합니다. 상대방이 무력으로 나오면 나도 무력으로 나가고 상대방이 나에게 상식없는 짓을 하면 나도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 악을 행한 자와 똑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의 선을 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경계선을 지켰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 에브라임을 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입다는 지혜롭게 싸웠습니다. 싸움의 대상과 싸움의 경계를 바로 알았습니다. 분명 에브라임 지파와 전쟁하는 것은 자칫 이스라엘을 분리시킬 수 도 있는 위험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에브라임이 쳐들어 온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경계를 넘어서는 악한 일이었기에 죄를 용납하면서 하나 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에브라임을 싸움의 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교회는 거룩한 연합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선을 넘는 것을 용납하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입다는 이것을 바로 알고 비록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부름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어긋나는 본질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 죄악이 바로 싸움의 대상임을 알고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대적되는 것과 싸운 것입니다.

또한 그는 요단강을 건너온 자들을 철저히 찾아내서 응징했지만 자기 감정대로 요단강을 건너가 에브라임 전체를 정죄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가 나의 친구고 적이냐를 구별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입다는 하나님의 명령과 세워주신 기준에 의해 분별하였고 하나님이 정해주신 땅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나의 싸움의 대상이 나의 감정, 나의 이익, 나의 분노, 나의 자존심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정해주신 기준에서 벗어나는 본질에 거슬릴 때 싸울 수 있는 용기의 사람, 지혜의 사람이 되시고 싸움을 하되 하나님이 정해주신 기준이 어디까지인줄 알아 내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분별하여 나갈 수 있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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