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것, 힘든 것, 화난 것, 분노한 것을 숨김없이 바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위장병이나 속병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들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참고 속에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병이 생긴다고 합니다. 제 자신을 보면 목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싫고, 힘들고, 어려운 것을 말과 행동으로 그대로 내색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속병이나 위장병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아마 매일 새벽에 나와 하나님 앞에 마음에 있는 것을 쏟아 놓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기도함 속에 힘들고, 어렵고, 답답한 것들을 쏟아 놓고 기도하면 힘들고 어려운 일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기쁨, 그리고 사명에 대한 감사할 축복들을 깨닫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하나님께서는 자녀 된 우리가 기뻐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는 기뻐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아갈 때 보다 불행하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시간이 더 많지 않은가 합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행복을 선택하기보다 불행을 선택하고 있고, 긍정적이고 밝은 쪽을 바라보기보다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을 보고 있을 때 불행하게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행복하기를 결단해야 하고 의지적으로 행복의 말을 해야 하고 행복의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고 불만과 불평을 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부정적이고, 되지 않을 것 같고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난관 속에서도 감사할 것을 생각하고 긍정적인 것을 하고 들으면 힘이 나고 내가 행복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선택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축복과 기쁨과 행복을 내가 선택하고 누려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해야 전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뻐하며 살아야 예수를 믿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행복을 선택하며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누리기를 원하시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살기를 원합니다. 내가 행복해야 내 가정이 행복해지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해집니다. 행복을 선택하고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교회도 행복해집니다. 예수 안에서 행복의 말을 선택하고 행복의 생각을 선택하고 행복의 행동을 선택함으로 행복을 누리며 내가 행복함으로 내가 있는 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삶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행복을 선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