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어릴적 배가 고플 때, 무엇인가 필요할 때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울음으로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채워 달라고 울음을 통해 요청합니다.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 울음과 눈물을 보입니다. 넘어져서 손과 무릎이 까졌을 때 울음을 터트렸고, 잘못한 일이 있어서 어머니에게 종아리에 회초리를 맞았을 때 울었습니다. 더 나아가 원통함과 분노할 때도 눈물이 흐르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인생을 한탄하며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우는 법, 눈물을 배운 적이 없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눈물을 흘리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주일예배에 나누고 있는 마태복음의 팔복의 말씀 속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지만 그 애통함과 울음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분노와 고통과 아픔으로 흘리는 눈물과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 있는 애통은 인간적인 울음과 다릅니다. 애통은 기도입니다. 애통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는 울음이 바로 애통입니다. 그 애통에는 마음에 있는 의심도 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아픔이 있어야 합니까? 언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까?”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상황으로 인한 애통, 누군가 나를 힘들게 하기에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사람을 찾아가 호소하고,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내편이 되어 달라고 험담하며 흘리는 울음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울며 애통하며 기도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애통의 기도를 드리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애통하지 않고 절망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원망의 자리에 주저 앉아 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불신앙을, 마음의 낙심함과 좌절함, 분노함을 하나님께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아뢰기를 멈춘 크리스찬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것은 불신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애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을 쏟아 놓는 애통하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삽니다. 우리가 하나이 주시는 하늘의 복으로 천국을 누리며 살고 모든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 용서와 용납, 인내와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물을 그치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부르짖는 참된 애통의 기도로 부르짖읍시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애통하는 자의 축복을 누리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