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다원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다원주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강요당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너도 옳고 나도 옳으니 자신의 신념을 갖고 사는 것은 좋지만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 뒤에는 절대 진리란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고는 조금만 논리적으로 따져 봐도 금방 모순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절대 진리가 없다는 주장을 수용하면 ‘절대 진리는 없다’ 라는 주장 자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도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을 말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이 다윈주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여과 없이 글이나 말로 즉시 내뱉을 수 있는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논리적이기보다 감정적인 사고를 더 부추기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다원주의 영향은 종교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똑같고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론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메시지에 강한 반감을 느끼고 다른 종교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 활동에 강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종교가 다 똑같고 예수님이 성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이런 반감이나 거부감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예수님이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주장에 과연 증거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부활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무슬림의 지도자 마호메트도 죽어서 무덤에 묻혔고,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죽은 후 화장되어 제자들에 의해 여덟 군데로 나누어 묻혔습니다. 유교를 창시한 공자도 죽어서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무덤은 없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어느 법정에 놓아도 진실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충분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성인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구세주라고 고백합니다. (최영기 목사님의 칼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