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들 동의하는 것이지만 사람은 머리로 안다고 아는 만큼 살아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내가 실천하고 행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아무리 테니스에 대해 책으로, 혹은 영상으로 어떻게 공을 쳐야 하고 어떻게 서브를 넣어야 하고, 어떻게 백핸드, 포핸드를 쳐야 하는지를 머리로 배웠어도 실제로 연습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테니스를 잘 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나인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TV에서 축구 시합을 하는 운동선수를 보면서 그들이 실수하면 “저걸 어떻게 저렇게 하냐?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하며 분노하고 질책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운동장에서 직접 뛴다면 자신이 말한 것처럼 뛰고 수행할 수 없으면서 말입니다.
신앙의 성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사실 머리로 아는 성경 지식이 넘쳐 납니다. 너무나 많은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도해야 하는 삶, 섬기고 사랑하는 삶. 용서하고 용납하는 삶. 믿음으로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알고 있습니다. 많이 듣고 알기 때문에 내가 그런 기도의 사람, 사랑의 사람, 믿음의 사람인줄 착각하며 살기 쉽습니다.
또한 내가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오래했기에 그 년수가 나의 믿음과 영적성숙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받는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신앙의 연수, 과거에 수고한 봉사들, 직분, 그리고 수없이 듣고 배운 성경지식으로 스스로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듣고 배운 것이 삶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선언하시고 계십니다. 삶의 동기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으로 하지 않는 모든 수고 역시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결국 삶의 드러나는 사랑의 모습과 예수님의 성품은 말씀대로 살려는 훈련을 열심히 할 때 나타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지만, 내 감정으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힘들고 어색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기에 순종하는 그 노력함이 있을 때 조금씩 편해지고, 자유로워지고, 자연스럽게 열매가 생기는 참된 신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