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후서 5:6-10
6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압니다.
7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8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9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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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진정 믿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대로, 세상의 관점과 판단으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심과 약속하시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심과 선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때 마음이 든든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알려 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소원들은 일시적인 소원들입니다. 조금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내 집을 갖는 것, 아픈 병이 낫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돈 걱정 없이 사는 것. 한마디로 말하면 이 땅에서 잘사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 땅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소원들은 영원하지 않는 소원들입니다. 세상적인 소원은 변하는 소원입니다. 이루어지면 잠시 기쁠지 몰라도 잠시 뿐인 소원입니다. 그것만 이루어지면 영원히 행복하고 좋을 것 같았는데 이루고 보면, 가져보면 허무하고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소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래서 늘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를 이루었으면 또 다른 소원을 붙잡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소원, 참된 만족과 행복을 주는 소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늘의 소원들입니다. 천국, 영원한 생명, 하늘의 상급, 하늘의 면류관입니다. 성도된 우리는 세상적인 소원이 아니라 하늘의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 사도 바울의 세 가지 소원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이 가졌던 첫 번째 소원은 주와 함께 살기를 바라는 소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소원했습니다. 8절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바울이 정말로 원했던 소원은 이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봄에 한국은 미세 먼지로 숨쉬기 힘들다고 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춥다고 힘들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베이지역의 기후 날씨, 그리고 공기가 너무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만약 천국을 다녀 온 사람이 있다면 이 땅에 아무리 좋다고 하는 곳에 산다고 해도 천국보다 이 땅에서 더 살고 싶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곳인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곳임을 알았기에 이 땅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며 살 수 있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하기를 소망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천국가면 좋겠다는 말과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소원이 아니라 현실 도피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정말로 천국의 아름다움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고 경험했기에, 정말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천국을 가기를 소원 원했던 것입니다.
그 천국의 소원,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다 수많은 고난을 받고, 매를 맞고, 비난과 고통과 감옥에 갇히는 수많은 환난이 있었지만 그 고난이 바울을 넘어트리지 못했습니다. 좌절시키지 못했습니다. 죽음 후에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살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것, 이 땅에서 세상의 욕심, 헛된 세상적 소원, 편함, 이익, 고난과 어려움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천국을 소원하고, 천국에서 주님과 영원히 살 것을 알고 믿고 소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국은 단지 미래에 죽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6절의 말씀과 같이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죽어서 가는 천국만 생각하면 안되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주 예수와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어떤 힘들 일에도 힘들지 모르고 어떤 고난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주님께 함께 있기 위해서 주님께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이 가졌던 두 번째 소원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는 것이었습니다. 9절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개역성경에는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 바란다는 말의 본 의미는 한번 노력해 본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고 정도의 마음이 아니라 세상적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을 꼭 이루고자 하는 야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변을 보면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프로 운동선수들을 보십시오. 야망이 있습니다. 우승을 하기 위해서, 일등을 하기 위해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고통스러운 훈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먹지 않고, 쉬지 않고, 놀지 않고 땀 흘리며 훈련합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대통령이 되고자 물심양면으로 뜁니다. 국민들의 한표를 더 얻고자 할 수 없는 수많은 공약들을 남발하도 합니다. 단식도 투쟁도 불사합니다. 속이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바울 역시 그런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야망은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를 위한, 나의 편함과 기쁨을 위한 야망과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야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절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무슨 말입니까?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요 소원이요 야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믿고 부르는 성도라면 내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기쁨과 뜻을 위한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나를 위한 소원을 가지고 신앙생활합니다. 내 기쁨이 우선이 됩니다. 내가 편해야 되고, 내 뜻대로 되어야 하고, 내가 위로 받아야 되고, 내 소원, 내 뜻, 내 기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사람이 나를 기쁘게 하지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워하고 포기합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을 소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에 소원을 두고 사는 성도들은 눈치보고, 쉽게 상처받고,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나 인정해 주지 않나에 따라 웃고 울며 살아갑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떠한 존재입니까? 우리가 지은 죄,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목숨을 버리시고 죽으신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위한 삶, 나의 기쁨, 나의 욕심, 나의 편함, 나의 기쁨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자가 가져야 할 소원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기에 사도바울은 구원 받은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로마서 12:1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성도는 삶의 기준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하는 결정 하나 하나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인지, 행동인지, 결정인지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배우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사는 소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8,10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결국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나니” 히브리서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그가 뒤로 물러서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상황, 형편, 내 편함, 내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런 행동, 이런 결정을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늘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눈치 보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살 수 있습니다. 내 기쁨보다 하나님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심판대 앞에서 상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10절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하여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은 멸망의 심판이 아니라 상급에 대한 심판입니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 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요한계시록 22:12 “보아라, 내가 곧 가겠다. 나는 각 사람에게 그 행위대로 갚아 주려고 상을 가지고 간다”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 행한대로 상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 세상이 아닌,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믿음으로 행한 일에 대해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는 그날에 받을 상을 소원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늘의 상을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그의 궁극적 목표와 소원은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천국에서 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음을 앞에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디모데후서 4:6-8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하늘의 상을 받기를 소원하며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 여부는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 앞에서 결정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애쓰고 사십니까? 인생은 길지 않습니다. 곧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처럼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가지고 사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쓰십시오. 공부도 나의 출세가 아니라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교회 사역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소원을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주님 앞에 섰을 때 상 받기를 위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완주하시고 믿음을 지키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