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4:19-22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해 주십시오.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앓고 있으므로 밀레도에 남겨 두었습니다.
21 그대는 겨울이 되기 전에 서둘러 오십시오.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신도가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22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하시기를 빌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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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죽음을 앞두고 로마감옥에서 사랑하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끝맺음 인사의 내용입니다.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에 몇 명의 사람들에게 문안을 전하고 디모데에게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본문을 통하여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세의 시대를 살아갈 때 우리가 싸워야 할 선한 싸움에 승리하고, 달려가야 할 길을 믿음으로 완주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19-29절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해 주십시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앓고 있으므로 밀레도에 남겨 두었습니다”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오네시보로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간단하게 문안해 달라고 했지만 그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닌 그들을 보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 그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 그리고 그들이 잘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에 함께 했고 늘 힘이 되었던 동역자 중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이 두 부부는 잊을 수 없는 복음의 사역을 위해 함께 최선을 다했고, 바울을 도왔던 사람들입니다. 브리스가, 혹은 브리스길라 가 아내이고 아굴라라 남편입니다. 아굴라는 유대인으로 그 당시 최고의 도시인 로마로 오게 되었고 브리스가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가는 그 당시 가죽을 다루는 사업을 하는 부자집 딸이였기에 두 부부가 가죽으로 천막을 만드는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유대인들을 추방시키게 되어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할 수 없이 고린도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데 그때 바울이 고린도로 선교를 오게 되었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납니다.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바울은 그들과 함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했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돕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울의 복음에 사역을 돕는 것은 단지 어느 정도 선교비를 주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8:18절을 보면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무른 뒤에, 신도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떠났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와 동행하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그들의 생업을 내려놓고 바울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를 따라갑니다. 한번 단기선교에 동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도전에 자신의 삶의 기업을 내려 놓고 따라 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놀라운 희생과 불편함, 보장된 삶을 내려놓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헌신은 어느 순간 뜨거운 감정과 감동에 의해 한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계속해서 그 복음의 사역에 충성하였고 끝까지 감당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바울이 보았기에 로마서 교회에 보낸 편지에 로마 성도들에게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로마서 16:3-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해 준 사람들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방 사람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과 핍박을 당할 때 그 핍박의 자리에서 함께 하며 바울을 돕고, 섬기고, 함께 그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과 충성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그러한 헌신과 충성은 바울에 대한 충성만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요 복음에 대한 충성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한 후에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고 부탁합니다. 오네시보로라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디모데후서 1:16절을 보면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내가 쇠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네시보로가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여러번 찾아와 위로하고 돌본 사람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당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을 찾는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오네시보로는 그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을 돌본 충직한 친구이자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그리고 오네시보는 바울은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에 함께 동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고 선교에 동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까지 내어 놓고 바울을 살리고자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이 생각나는 사람, 고마운 사람, 복음에 동참하여 헌신하고 섬김에 충성을 다하는 자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1절을 보면 바울은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신도가 그대에게 문안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위의 나오는 이름들은 성경 다른 곳에 전혀 어떤 기록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분명 그들 역시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와 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애쓰고, 고난을 받고, 믿음을 지키며 복음을 전하는데 힘을 다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믿은 후, 그 십자가의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위해 고난과 어려움, 핍박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바울처럼 함께 동역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도전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이 시대와 비교할 때 바울이 복음을 전하며 믿음을 지키던 그 초대 교회의 시대가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였습니까? 붙잡혀서 감옥에 가고 사형을 당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성도들이 있었기에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달되어 구원 받은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내 힘과 결단과 노력으로 복음을 지키고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 맡겨주신 사명을 믿음으로 지킬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시는 은혜임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기에 디모데와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하며 기도하는 것이 22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그대의 영과 함께 하시기를 빌며,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마지막 인사말이 아닌 바울이 평생 경험하며 깨달은 승리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편지를 보낼때 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라고 시작하고 마지막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있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 죄 용서함을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이요 종이 된 것도, 복음의 사명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그 은혜로 인해 더욱 주의 일에 힘을 쓰심으로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