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2:9-10
9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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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에 대해 9절에서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고난을 당합니다. 즉 어려움을 당합니다.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죄성을 우리들은 대부분 내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를 남의 탓을 하고, 상황 탓을 합니다. 부부 관계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는 배우자를 탓하고,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는 나쁜 상관이나 동료, 혹은 고객들 때문이라도 생각하고 말합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운전을 하는 중에 뒤에 차가 방심하다가 내 차를 들이 박아서 다칠 수 있습니다. 생각지 못한 병에 걸려서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가 당하는 고난을 보면 나의 실수와 지혜가 없음으로 잘못된 판단이나 말과 행동, 혹은 결정으로 당하는 고난인 경우가 많습니다. 조심하지 않아서, 욕심을 부려서, 제때에 하지 않아서, 혹은 용기를 내어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미루어서, 분노를 참지 못하여서,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들은 고난을 당했을 때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나 자신부터 돌아봅니다. 내가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내가 분노를 절제했는지, 바른 판단을 하지 않은 것인지, 내 생각이 짧은 것이 아니었는지,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한 것은 아닌지, 내가 조급했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봅니다. 그것이 지혜이고 성숙한 믿음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끊임없이 유대인들에게 비난을 당하고, 여러번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지금도 로마 감옥에 갇히고 매여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고난을 넘어서 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울이 고난을 당한 것은 어떠한 잘못이나 인간적인 이익을 위한 욕심, 죄를 지어서가 당한 고난이 아니라 바로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우월감을 가진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주신 율법이 있고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나사렛 시골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가 죽은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했고 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라고 가르치고 전하는 바울을 이교도의 괴수로 여겼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대속의 죽으심이요, 그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이단 사상이라고 배척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메시야시오 구원자되심을 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죄 용서함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전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고, 선을 행함으로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했던 죄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죄인됨을 깨닫고 그러한 죄인이요 하나님께 원수 된 자신을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오 구원의 길이 되신 구세주와 주님 되심을 알았기에 그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으로 인해 고난을 당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방해하기 위해 고난과 핍박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복음을 인하여 로마에까지 붙잡혀 와서 쇠사슬에 매인 채로 감옥에서 갇힌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런 죄가 없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복음을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는데 당했고 매이고 갇혔다면 원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며 “내가 그동안 수고하고 애쓴 일이 헛된 것이었나?”라고 의심할텐데 놀랍게도 바울은 9절에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핍박하고, 나를 어렵게 하고, 나를 감옥에 넣어 묶어 둘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까지 매어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당하고, 매이지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구원의 복음은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난을 당하고 매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로 하여금 모진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담대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한 이유를 10절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10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현재 당하고 있는 이 고난이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 자신이 이 세상에서는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만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에 자신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로 인해 당한 고난으로 인하여 수많은 잃어버린 영혼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하였기에 그들과 함께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모든 고난과 지금도 로마 감옥에서 매여 있는 시간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다른 성도들에게 복음의 삶을 살라고,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은혜 안에 강함으로 감당하라고 권면함으로 그들도 지금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스로운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매임을 참고 인내하는 모습을 자신을 의지하며 지켜보고 있는 많은 성도들과 동역자들, 그리고 교회 역시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동기와 힘을 얻어서 그들도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하려고 참고 견디고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복음을 받은 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무엇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고, 그 고난을 어떻게 인내하고 있는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함으로 그 받는 고난이 나의 욕심, 나의 원함, 나의 지혜 없음과 잘못으로 받는 고난이라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고난이 되기를 원합니다. 변명과 원망과 탓을 버리고 나를 더 성장하고 바르게 세워주는 고난으로 기쁘게 여기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이 바울과 같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되고, 복음으로 인해 매인 고난이 되기를 원합니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복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세상의 흐름을 거스리고, 육체의 욕심과 편함을 버리고, 죄의 유혹과 사단의 공격과 맞서기 위해서 받는 후에 영광스러운 상을 받는 고난이 되기를 원합니다.
고난을 당하고 매임을 받으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 순종해야 할 말씀, 붙들고 살아야 하고 전해야 하는 복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매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계속해서 전진해 나가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요 농부의 수고와 애씀이 중단되지 않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 하심으로 그 고난과 매임을 이기는 승리자로 서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