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5:23-25
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십시오.
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명백해서, 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드러나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납니다.
25 이와 마찬가지로, 착한 행실도 드러나게 마련이고, 드러나지 않은 것도, 언제까지나 감추어져 있지는 못합니다.
————————————————–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교회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와, 교회를 섬기도록 안수하여 세울 목사와 집사들을 세우는 기준, 그리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세우신 목회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라는 권면을 한 후에 디도데에게 개인적인 권면을 합니다. 그것이 23절의 말씀입니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십시오”
디모데가 나이는 젊지만 건강이 약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장이 좋지 않았었고 자주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디모데에게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마시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들은 이 말씀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포도주를 권면하기에 성도된 우리들도 술을 마셔도 되는 것으로 해석해서 자신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정당화 하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또한 건강을 위해서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는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성도들에게 술이 건강에 좋으니까 마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위가 좋지 않은 디모데에게 부득이하고 특별하게 아주 조금만 술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용도로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 더 맛있게 소화 잘되게 건강에 아무런 문제없는데 분위기 잡고 취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살펴보았지만 교회의 목회자가 될 사람의 자격으로 3절에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또 집사가 될 사람도 8절에 “술에 탐닉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화는 물이 귀하기에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기적이었습니다. 잔치날에 포도주는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서부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사람 중에는 나실인들처럼 포도주나 술을 마시지 않는 규율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약시대에 그리고 초대 교회 성도들 가운데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며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물만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디모데 역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서약을 하면서 포도주나 술, 고기를 마시지 않겠다고 했고 그렇게 지켜 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중동 지역에는 물이 좋지 않은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끊이지 않고 마시면 몸이 약한 사람들은 아프거나 질병도 생긴다고 합니다.
바울이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고 그렇쟎아도 몸이 약해 잦은 병이 있는 디모데를 알았기에 디모데의 건강을 위해서 23절에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십시오” 라고 사랑의 권면을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술에 대한 내용이 나오기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구절은 그 맥락을 살펴서 내가 원하고, 내가 하는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건강을 잘 챙겨야 합니다. 건강해야 모든 일을 힘 있게, 충성되이, 더 나아가 기쁨과 즐거움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지혜롭게 육신의 건강함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음식과 운동과 쉼의 밸런스를 잘 챙겨서 주님의 일을 끝까지 힘 있게 감당하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4-25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명백해서, 재판을 받기 전에 먼저 드러나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나중에야 드러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착한 행실도 드러나게 마련이고, 드러나지 않은 것도, 언제까지나 감추어져 있지는 못합니다”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교회의 목회자나 집사, 제직들을 세울 때 그들의 죄나 착한 행실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크게는 모든 성도들, 저와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어떤 사람의 죄는 분명히 드러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세워서는 안되는 잘못된 모습이나 죄가 드러나는 사람은 교회의 제직으로 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죄는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6절에 “또 새로 입교한 사람도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지만 문제는 사람들 앞에서는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경건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은밀한 죄가 있고 속이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많은 이단들이 교회로 침투해 올 때도 그 교회에 정말 필요한 일꾼이 들어온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를 숨기고 생활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정말로 경건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에 속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담이요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실 정도로 그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는 교만, 자기 의로움, 비난, 정죄, 무시, 업신여김, 스스로 속임의 흉악한 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숨기고 속인다고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은밀한 죄는 다 드러나게 됩니다. 회개함이 없는 삶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하신 빛으로 우리 마음을 비추어 숨겨진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25절에 “이와 마찬가지로, 착한 행실도 드러나게 마련이고, 드러나지 않은 것도, 언제까지나 감추어져 있지는 못합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힘이 되고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교회를 사랑함으로 마음 쓰고, 희생하며 섬기는 모든 일들을 모두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하는 선한 일에 대한 인정과 칭찬, 보상이나 열매가 바로바로 생기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누구나 다 선하게 살려고 애를 쓸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경험하듯이 이 땅에서는 마음을 다해 선한 일을 한 사람을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보 취급하고, 더 이용하려고 하고, 원래 그런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놀랍게도 오히려 악한 일을 하는 사람,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이기적이고 자기 원함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모습과 취급을 당할 때 마음에 상처와 낙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할 때 25절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충성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남모르게 사랑하고, 섬기고, 희생하는 선한 모습을 다 기억하시고 마지막 날에 드러내시며 영광스러운 하늘의 상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장이라고 불리우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우리가 마지막 날, 죽음 후에 부활의 몸을 입고 주님 앞에 서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선한 일들을 주님께서 다 아시고 그 선한 일에 대해 놀라운 상과 축복과 인정함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기에 58절에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라고 권면하십니다.
이 경고와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 은밀한 죄를 버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인정하고 칭찬하지 않을지라도 보이지 않는 선한 행실을 주님을 위해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