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5:1-9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줄곧 졸랐다.
3 그들은 그에게 제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길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다.
4 그러나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도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5 “그러니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를 고발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6 베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여드레인가 열흘인가를 지낸 뒤에,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석에 앉아서, 바울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다.
7 바울이 나타나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걸어서 고발하였으나,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8 바울은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9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에게 묻기를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지 않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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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벨릭스 총독이 로마로 송환되고 새로운 총독인 베스도 총독이 새로 부임하여 바울을 재판하는 사건입니다. 지난 주에 나누었지만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사형시켜 달라고 고소를 했지만 바울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물을 받기 위해서 재판을 연기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4:17절을 보면 “두해가 지난 뒤에 보로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두어 둔채로 내버려 두었다”벨릭스는 유대인들이 사형은 시키지 않아도 바울을 감옥에 넣어 두는 것을 원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의 환심을 얻고자 바울을 계속해서 감옥에 넣어 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베스도 총독이 부임해서 온 것입니다. 25:1-3절을 보면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사흘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 사람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바울을 고발하였다. 그들은 그에게 줄곧 졸랐다. 그들은 그에게 제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불러 올리라고 간청하였다. 그들은 길에 사람을 매복시켰다가 바울을 죽일 계획이었다”
베스도 총독이 가이사랴에 부임했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 왔습니다. 이스라엘에 와서 유대인들의 리더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부탁 받은 첫 번째 부탁이 가이사랴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다시 재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울을 가이사랴가 아니라 자신들이 있는 예루살렘에 데려와서 자신들 앞에서 재판을 해 주시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을 다시 재판하여 그의 잘 잘못을 가려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재판으로는 바울을 죽일 만한 내용과 증거가 없기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이송되어 올 때 오늘 길에 바울을 암살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의 뒤를 이어 유대의 총독으로 온 베스도 총독 역시 정치 9단입니다. 그들이 요청이 바울 죽이기를 원하는 그들의 의도를 베스도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그들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기에 4-5절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무사하게 감금되어 있다는 말과 자기도 곧 그리로 가겠다는 말을 한 다음에, “그러니 만일 그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거든, 여러분 가운데서 유력한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를 고발하시오” 라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바울은 가이사랴 감옥에 잘 감금되어 있기에 그들이 원하는대로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라고 명하지 않을 것이고, 재판을 원하면 자신이 다시 가이사랴로 올라갈 때 함께 가이사랴로 올라와서 고소하라고 한 것입니다. 베스도 총독은 유대인 리더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 유대인들이 할 수 없이 베스도 총독이 말한대로 가이사랴로 고소하기 위해 올라가고 베스도 총독은 바울을 불러내어 그들 앞에서 바울을 재판합니다. 7-8절입니다. “바울이 나타나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여러 가지 무거운 죄목을 걸어서 고발하였으나, 증거를 대지 못하였다. 바울은 “나는 유대 사람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황제에 대하여 아무 죄도 지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여 자신을 변호하였다”
베스도 총독도 바울을 재판해 보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고소하는 죄목들과 그들이 그 죄목들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하고, 바울이 그 고발한 죄목에 대해 변호하는 내용을 들었을 때 베스도 총독 역시 바울에게 전혀 죄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았습니다. 고소한 내용을 들었고 그 고소한 내용이 전혀 바울의 위법한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죄를 판결하고 바울을 석방시켜야 하는 것이 절차입니다.
그런데 베스도는 바울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고 석방을 시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가이사랴에서 재판하는 그 재판을 종결하지 않고 다시 재판을 하는 것으로 재심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9절에 이렇게 질문합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에게 묻기를 그대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싶지 않소” 지금 재판을 하고 있고 유대인들의 고소의 내용과 바울의 변호를 듣고 바울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왜 예루살렘에 자기와 함께 가서 다시 재판을 받지 않겠냐고 베스도가 묻습니까? 그 이유를 유대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무죄라고 판결하면 유대인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고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이제 부임해서 다스려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바울을 이송해서 보내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일 것이고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되는 상황을 보는 것입니다.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 전임 총독 벨릭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24:27절을 보면 “두해가 지난 뒤에 보로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후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벨릭스는 유대 사람의 환심을 사고자 하여 바울을 가두어 둔채로 내버려 두었다”벨릭스 총독도 사도 바울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넣어 두었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닌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어서 총독으로 이스라엘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서 죄 없는 바울을 2년 동안 감옥에 어 넣은 것입니다.
벨릭스와 베스도와 같은 모습이 인간의 죄성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위해서 살아갑니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을 보면 다 사회와 나라를 위해서 일하겠다고 선언하고 공약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자기가 높아지고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는 우리도 예수를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결국 여전히 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받으려고만 하는 삶을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예배를 드리기 보다 예배를 통해 받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과 헌물을 최선을 다해 드리는 예배가 아닌 예배가 은혜가 없다,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판단하는 자로, 받고자 하는 자로 나오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베스도, 벨릭스가 그랬습니다. 베스도와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환심과 기쁨을 얻어 내가 편하고 내가 잘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양심과 정의를 버리고 거짓과 권력을 남용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들은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미가서 6:8절에서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베스도와 벨릭스의 모습이 가득한 세상에서 나의 이익을 위해 거짓과 속임의 삶을 버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인 정직과 바름, 겸손으로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