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9:21-22
21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래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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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절은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라고 시작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라는 말은 20절에 “주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퍼져 나가고, 점점 힘을 떨쳤다” 는 에베소에 부흥이 일어난 뒤입니다. 부흥이 일어난 것은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따라 담대하게 최선을 다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을 때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어 우상을 버리고 자신들이 죄를 깨닫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구세주요 주님으로 믿음으로 죄 용서함을 받음을 믿고 영접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그들은 참된 회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지은 죄들을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회개했고, 그동안 섬기며 가지고 있던 우상들과 마술책, 지금으로 말한다면 부적들을 모든 사람들 앞에 가지고 나와 모아서 지금의 시세로 약 몇 백만불이나 되는 것들을 아낌없이 불살랐습니다.
그러한 모습 속에서 바울을 통해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아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놀라운 기적들, 병 고침과 귀신이 떠나는 역사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이 흥황하여 세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즉 바울이 에베소에 머문지 약 3년이 지난 후에,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침으로 에베소에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로마에 가겠다고 계획을 말합니다. 그것이 21절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에 작정하고 “나는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꼭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 왔지만 바울의 1,2,3차 선교를 할 때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핍박이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믿는 성도들이 생기고 교회가 세워졌지만 대부분 유대인들의 박해와 핍박으로 얼마 머물지 못하고 그곳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3차 선교에 오게 된 에베소에서는 약 3년이라는 시간을 머물고 있었습니다. 두란노 학당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있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며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며 목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서 계속 머물겠다” 라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성공한 곳인 에베소를 떠나 다시 마게도니아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서 사역 보고를 하고 나서 로마에 가겠다는 계획을 말합니다.
그의 그런 마음과 계획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을 기억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였던 자신을, 더 나아가 구원자요 메시야 예수를 핍박했던 자신을 부르시고, 용서하시고, 택하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음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편함이 아닌, 자신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의도와 뜻을 바로 알기 때문에 성공한 곳, 편한 곳, 인정 받는 곳인 에베소가 아닌 복음이 더 필요한 곳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이요 보여야 할 부르심에 합당한 모습인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택하심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나를 보내시는 하나님,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군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부르심, 나의 택하심, 나의 보내심을 알 때 초심을 잃지 않고 겸손함과 충성됨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를 부르시고, 택하시고, 세우셨다는 것을 잊으니까 교만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분노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낙심과 좌절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라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그리고 보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성공과 편안함,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사로 잡혀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편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편함만이 아닌 어려움과 핍박 속에서도 전해야 할 복음을 위해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복음이 필요한 곳,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아갔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의 결단을 통해서 우리의 삶도 그러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원함과 편함, 나의 소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보내심을 이루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서 나를 위해 이루고자 하는 꿈과 소원을 향해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택하셨기에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원과 꿈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로마로 가고자 하는 계획을 알립니다. 아직 에베소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22절을 보면 “그래서 자기를 돕는 사람들 가운데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내고, 자기는 얼마 동안 아시아에 더 머물러 있었다” 라고 말합니다.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금 필요한 것을 감당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지금 감당하는 사역이 있지만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선한 꿈과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은 자의 모습임을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이 시간 기도할 때에 지금 감당해야 하는 지금의 사역에 충성을 다 하며 더 큰 비전과 사명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할 수 있는 열정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