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4:19-22

19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20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21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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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는 도시에 와서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사람의 형상을 입고 온 신이라고 여겨 그들에게 제사를 드리겠다고 항소들과 화환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들은 단지 헛된 것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게 하기 위해서 온 사람이라고 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 본문의 사건입니다. 19절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안디옥과 이고니온은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 오기 전에 들렸던 도시입니다. 그곳 유대인들의 회당에 갔었고 전할 말이 있느냐는 요청에 유대인들이 믿고 기다리던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구원자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전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죄 용서함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의 길임을 전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많은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었습니다. 자신들만 믿은 것이 아니라 그 복음을 듣지 못한 그 동네 모든 아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다시 그 복음을 듣기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선민 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했고 쫓아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있었고 안디옥에서 이고니온로 가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 곳에서 그 복음을 들었던 유대인들도 동일한 반응을 보였고 더 나아가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해서 루스드라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안디옥과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루스드라에 몰려와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바울과 바나바가 돌려 쳐서 죽여야 할 사람들이라고 설득하였고 설득을 당한 사람들이 바울 붙잡아 돌을 던졌고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바울의 시체를 성문 밖으로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유대인들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죄 용서함을 받는 복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복음을 전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믿고 있고 추구하고 있는 유대교, 즉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의 힘과 노력과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 받는다고 것을 무너트리는 참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거부하는 것만 아니라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핍박하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서 그 복음을 전하고 다니는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겠다고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있는 유대인들이 루스드라까지 쫓아 내려와 루스드라 사람들을 포섭하여 바울을 잡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나서게 한 것입니다.

이 일은 단지 유대인들의 시기심이나 자신들의 믿는 사상에 부딪히기에 보인 행동이 아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단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사탄을 따르는 자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을 받는 참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들이 생각하고 세워 놓은 종교적 행위나, 형식을 붙들고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사단이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미련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상식과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 받는다는 소리를 말도되지 않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말로 치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단은 교회 안에 거짓선생, 거짓 선지자들을 보내고 자리 잡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그럴듯한 잘못된 가르침을 퍼트려 교회 안에 성도들을 구원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서 알려주고 보여 주는데 그 책망과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하게 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어찌하든 복음을 전하는 자들, 복음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전하는 자들을 공격합니다.

그렇기에 19절의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사람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거기로 몰려와서 군중을 설득하고, 바울을 돌로 쳤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그를 성 밖으로 끌어냈다.”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갑작스럽게 잡혀 갔고 그들에게 둘러 싸여 그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죽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것입니다. 그런 바울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던져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온 몸에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기절해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던져진 바울이 눈을 뜨고 정신이 든 것입니다.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온 몸이 돌에 맞아 쓰라리고 아픕니다. 그런데 정신이 든 바울이 어떻게 합니까? 20-21절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그는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났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제자를 얻은 뒤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있는 곳, 자신을 죽이려고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으로 내 던진 자들이 있는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멀리 도망쳐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분명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자신이 당한 일을 보고 믿음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여 그들을 격려하고 믿음에 서라고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더 큰 핍박을 받자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라는 도시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반대하는 사단의 공격이 있습니다. 방해와 핍박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 받은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포기하지 않고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까지 복음을 전한 후에 그동안 복음을 전했던 곳을 다시 들려서 안디옥 교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21절을 보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돌아갔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은 성도들과 제자들에게 22절에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믿음을 지키라고 권하였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알듯이 초대교회 시대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으로 인해 많은 박해와 핍박이 있었습니다. 매맞음과 감옥에 갇힘과 더 나아가 고문과 죽음까지 당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미국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종종 비웃거나 손가락질을 당하지만 그러한 박해와 핍박은 없습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삶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영적인 공격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희생과 손해, 억울함, 내려 놓음의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영적인 환난을 겪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한 환난이 없다면 이상한 것입니다. 22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이러한 환난을 이기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받는 고난과 어려움을 이기는 믿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나라에 이르기 까지는 많은 환란을 당해야 한다는 것을 각오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어떤 희생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 믿음만은 꼭 붙들고 지키며 사시기 바랍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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