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4:1-7

1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2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선동해서, 믿는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하였다.
3 두 사도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4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더러는 유대 사람의 편을 들고, 더러는 사도의 편을 들었다.
5 그런데 이방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했다.
6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하였다.
7 그들은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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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장인 사도행전 13장에서는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이 아들이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 구원자이심을 구약의 예언서에를 인증하며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바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대속의 죽으심이요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길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요 복음임을 선포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 많은 이방인들이 믿었지만 구원은 율법을 지킴으로, 율법의 행위로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의 반대와 박해로 그 지역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이라는 곳으로 오게 됩니다. 본문 14장은 이고니온에 온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에서도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와서 말씀을 전했고, 이곳에서도 회당에서 그 복음을 들었던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습니다. 1절이 바로 그 일에 대한 내용의 시작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하였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이 많이 믿게 되었다”

그런데 이곳 이고니온에서도 안디옥에서 일어난 동일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2절입니다. “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지 않은 유대 사람들이 이방 사람들을 선동해서, 믿는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을 품게 하였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고 거부하고 더 나아가 복음을 받고 믿은 형제들에게 나쁜 감정, 즉 사도 바울을 적대하게 하는 험담을 하여 관계를 어렵게 하고, 좋지 않는 감정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모습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단에 사로잡힌 사람들,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 13장에서 표현된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늘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기에 힘쓰는 사람, 사역자, 목회자, 성도를 반대하고, 험담하여 편을 짓게 하고,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자 할 때 반드시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사단에게 쓰임 받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할 때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이해하고, 기도함 속에 말씀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서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상처받았다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다투고 싸웁니다. 못하겠다고 포기합니다. 사단이 원하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원리를 3절에서 보여 줍니다. “두 사도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면서,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바울과 바나바는 먼저는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은 어떠한 곳입니까? 자신들을 비방하고, 방해하고, 험담하여 나쁜 감정을 갖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즉 힘들고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거기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모습인 원망이나 불평, 상처 받았다, 못살겠다 라고 한숨 짓거나 쓴뿌리를 품고 이를 악물며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말하였다” 즉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감당해야 할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담대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보여야 할 성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구원을 받은 자, 복음을 받은 자,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인내와 오래 참음, 그리고 담대함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주님을 힘입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황이나 감정,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뜻 가운데 말씀대로, 명령대로, 사명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갈 때 주님께서 그 일에 함께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후반절에 “주님께서는 그들의 손으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바울과 바나바가 오래 남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 주님께서 함께 힘을 합하여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손에 능력을 주셔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해 주심으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증명해주신 것입니다.

표징과 놀라운 일이란 사람의 힘으로 능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떠한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했는지는 본문에 나오지 않았지만 불치의 병을 치료한 기적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료의 기적,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그러한 기적일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명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전했고, 놀라운 표징과 이적을 보였는데 4-5절을 보면 “그 도시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서 더러는 유대 사람의 편을 들고, 더러는 사도의 편을 들었다. 그런데 이방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이 그들의 관원들과 합세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모욕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했다”라고 말합니다. 여전히 두 무리로 나뉘어집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 복음을 듣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도 믿지 않고 반항하는 사람들입니다.

놀랍게도 개인적으로 복음을 거부하는 것만이 아닌 사람들을 모아 합세하여 바울과 바나바,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운 자들을 모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단에게 사로잡혀 악한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하며 그러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열과 다툼으로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의 특징도 그러합니다. 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착각하며 사람들을 규합하고 선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멸망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모습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하고 늘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에 서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6-7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것을 알고,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두 도시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하였다. 그들은 거기에서도 줄곧 복음을 전하였다”바울과 바나바는 그러한 상황속에서 그곳을 떠나 루스드라와 더베로 피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곳에서 한 일은 거기서도 줄곧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장소와 상황은 다르지만 그들은 같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생명의 말씀을 어디에서든 전하는 의무와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가 따르고 본받아야 할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곳과 만나는 사람은 다를지라도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동일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 받는 십자가의 복음에 합당한 삶, 그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단의 세력들이 늘 우리를 복음에서 벗어나도록 공격하고 방해함을 깨닫고 무너지고, 상처받고, 원망과 분노, 뒤로 물러서는 자가 아닌 주님을 힘입어 담대함으로 승리하는 자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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