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3:38-39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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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집트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셨고 다윗 왕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자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하신 약속대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죄 용서함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받는 은혜를 주신다고 알립니다. 구원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즉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닌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 수백년간 나라가 망하여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제국에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야 구원자는 식민지 압제에서 해방을 시키고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의 때에 전성기처럼 강대국으로 다시 이끌어 줄 메시야 구원자를 고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구원자는 이 세상의 나라를 회복하고 이 땅에서 부하게 하는 왕이 아닌 하나님의 저주와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구원자, 죄를 대속하여 주심으로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허무시고, 죄와 사망, 사단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사랑의 관계가 되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천국 백성, 거룩한 성도로 세움 받게 하는 구원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메시야 구원자에 대한 잘못된 오해와 기대가 있었기에 바울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얻어야 할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38-39절의 말씀입니다. 개역 성경으로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우리가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38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알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며” 이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무엇을 얻습니까? 바로 죄사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우리의 죄사함을 위함입니다. 죄 사함이 없이는 구원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무엇에 대한 심판입니까?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에 그 죄의 저주, 그 죄의 형벌, 그 죄의 심판으로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질 운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 흉악한 죄인,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됨을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 후에 있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조차 농담으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자신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택한 선민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특별히 자신들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십일조 생활하고, 예배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이기에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리나 창녀, 그 외의 백성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의롭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던 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요, 독사의 자식들이요, 마음에 악이 가득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까?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흉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말씀과 기준 앞에 인정하고, 깨닫고 죄에 대한 회개함으로 죄 용서함을 간절히 구하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세리의 기도와 같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달린 십자가에 우편에 달린 강도와 같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천국에 갈 수 있는 의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인된 나를 기억하시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라고 겸손함으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간구했을 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놀라운 죄용서함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죄 용서함은 예수께서 죄 용서함을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고 겸손함으로 나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긍휼하심을 구하며 회개하며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갈 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힘입어 겸손함과 긍휼하심을 구하는 죄 용서함이 아닌 나의 의를 믿고 교만함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한 모습이 있었기에 39절에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들이 추구하던 것이 바로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내가 의로운 자가 되고 나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율법의 행위를 힘입고 붙들고 나간 자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바울도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자신의 삶을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다”라고 자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가장 큰 이유는 율법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19-20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라고 알려 줍니다.

율법은 지켜 그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악 속에 거함으로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그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을 힘입어도 죄의 문제, 죄 용서함,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어떠한 선행이나, 노력, 종교적인 행위로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죄용서함을 받을 수 있는 길,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자가 없느니라” 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주신 율법과 계명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율법과 계명을 지켜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다 함을 얻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그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고 우리 힘으로 행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의 명령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행함으로 거룩하고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예수를 힘입어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용서함과 구원함을 받고,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예수를 힘입어 모든 일에 감사와 기쁨, 섬김과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자임을 기억하고 예수를 힘입어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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