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3:1-5
1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나바와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과 더불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나엔과 사울이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위해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라. 내가 그들에게 맡기려 하는 일이 있다.”
3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한 뒤에, 두 사람에게 안수를 하여 떠나보냈다.
4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5 그들은 살라미에 이르러서,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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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의 말씀은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충만함으로 큰 부흥을 이루었던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을 시기하고 죽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함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핍박이 심해짐으로 그 핍박을 피해 왔던 성도들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함으로 믿기 시작한 이방인들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목회자로 보냈고 바나바는 다소에 있던 사울을 데리고 가서 담임 목회자로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바울은 여러지역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로 파송하는 내용이 사도행전 13장의 말씀이고 바나바와 바울이 어느 지역, 어디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했고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는 내용들이 사도행전 28장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수님이 명하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사명을 감당하려고 애쓴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수님의 주신 지상 사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만 머물렀기에 하나님께서 흩으셨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주님의 지상 사명에 순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하나님께 드렸던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리더인 바나바와 바울을 택하여 복음 사역을 감당하도록 보냈고 그들을 후원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와 같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번에도 아리조나 나바호 단기선교를 나가는 것 귀한 일인 것입니다. 어찌하든 그 지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의 것을 드리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금식하며 기도함 속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원하심대로 첫 선교사로 택함을 받은 바나바와 바울이 4절을 보면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보내시는 곳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에도 한번 나눈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지만 저에게 큰 도전과 목회하며 또한 신앙생활하는데 지침이 되게 한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 생각납니다. 그 목사님께서 자신에 대해 간증하시면서 자신은 한국에 어느 큰 교회에서 부목사로 잘 섬기고 있었고 인정받는 목사였다고 합니다. 수석 부목사까지 되었기에 대부분 어느 큰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합니다. 큰 교회 담임 목사로 가면 경제적인 부분이나,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사역적인 면에서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쳐 볼 수 있게 되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그렇게 큰 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 받아 가는 것 보다 개척 교회를 시작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함으로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여 큰 교회 담임 목사로 부임하여 가지 않고 어느 지역에 개척 교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년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전도도 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부흥하지 않고 점점 어려워지는 결과를 맞이했다고 합니다.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편한 큰 교회 목사로 가는 길을 포기하고 좁은 길, 의미 있는 길을 택하며 사역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도와 주시지 않고, 부흥시켜 주시지 않느냐고 하루는 금식하며 철야하며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머리를 치시는 한 음성을 들려 주셨다고 합니다. 그 음성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닫고 회개하고 다시 엎드려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음성은 바로 “내가 너에게 언제 개척교회 하라고 했냐? 그건 네가 하고자 한 것이지 내가 하라고 한 것 아니다” 라고 하시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내 생각에는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고 누가 봐도 희생하고 힘든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시키지 않았고, 원하시지 않고, 인도하지 않는 일인데 행하기가 얼마나 쉽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기 얼마나 쉽습니까? 이러한 착각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엉뚱한 일을 하며 하나님의 교회와 성령의 역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늘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기도와 분별력을 구하기를 원합니다.
4절을 다시보면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시므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보내시는 곳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순종인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 내가 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이 가라고 하신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 보내신 곳이 바로 키프로스였던 것입니다. 옛날 성경에는 키프로스를 구브로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키프로스는 이스라엘 서쪽에 있는 지중해에 있는 제주도의 네 배 정도 되는 큰 섬나라입니다. 실루기아는 키프로스 섬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탈 수 있는 항구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볼 때 안디옥에서 선교를 갈 때 섬으로 나가기 보다는 육지로 가는 것이 더 쉬웠고, 더 큰 도시나 다른 지역으로 움직이기 편하고 전략적으로도 좋았을 것입니다. 육지를 통해서 세계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갈 수 있는데 왜 키프로스 섬으로 갔을까요? 키프로스는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예루살렘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서 안디옥 보다 먼저 갔던 곳이었고 키프로스 섬에 있었던 성도들이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했던 섬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19-20절을 보십시오.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말을 하여 주 예수를 전하였다”
키프로스에서 온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복음을 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성령님께서는 그 키프로스에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더 확실하게 복음을 전하라고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바나바의 고향이 바로 키프로스, 즉 구브로 섬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고향과 그 고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저도 이번 한국 방문을 했을 때 지난 번에 이어 고향 친구들 몇 명을 다시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지난 번 생각지 못하게 약 30년간 만나지 못했던 어릴적부터 같은 교회를 다녔던 고향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을 더욱 느낍니다. 만나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이 신앙에서 멀어져 있었고, 한 친구 빼고는 다 이혼을 하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처음 만나자 마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을 주셔서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신앙과 구원, 복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볍게 나누고 도전하고 돌아왔는데 이번에 다시 나가 두 번째 만나니 처음에 만났을 때 보다 훨씬 더 마음을 열고 그동안의 상처와 아픔들, 그리고 신앙에서 멀리하게 되는 이유들을 서슴없이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신앙에서 떠났다가 약 15년 전에 예수님을 바로 만나 믿음에 뜨거운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꼭 짠 것처럼 우리가 만난 예수님과 받은 은혜와 변화된 삶, 그리고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는지를 나눌 때 성령님께서 그 자리에서 역사하시고 만져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3-4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에 한 친구가 저에게 “진수야, 너는 이번에 우리를 만난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 같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기의 목적이 뭔데?” 라고 물으니까 “너는 우리가 교회에 다시 나가고 신앙생활 다시 하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를 만나는 목적이 아니야?” 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웃으면서 “그거야 당연하지. 친구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교회에 다시 나가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지” 라고 대답했더니 저와 대화하면서, 그리고 저의 간증을 들으면서 자기 집 바로 앞에 큰 교회가 있는데 약 20년 동안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나 마음이 한번도 들지 않았었는데 “이제 나가봐야겠다” 라는 마음이 꿈틀꿈틀 일어나고 마음을 뜨겁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진수야, 나도 네가 만난 그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고 싶어. 늘 그런 소원이 있었어” 라고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나바가 바울과 함께 고향인 키프로스에 갔을 때 믿는 성도들을 만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믿고, 변화되어 살아가는 삶을 나눌 때 서로에게 큰 되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고향의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놀라운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자신이 알게 되고, 믿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받은 놀라운 구원의 축복과 자신의 삶이 놀랍게 변화되어 예수를 믿는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전했을 때 그 기쁨과 그 마음이 얼마나 충만했을지를 깨닫게 되고 동감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하시고 보내십니다. 예수를 만난 그 놀라운 축복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알고 믿음으로 받은 그 놀라운 구원과 축복을 가서 알려 주라고 보내십니다. 믿으십니까? 가까운 예루살렘에서, 더 나아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가서. 바나바와 같이 고향의 친국들과 지인들에게 가서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하라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요, 충만함이요, 인도하심인 것입니다.
그 보내심을 받아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받은 구원, 내 삶을 변화시키시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들을 간증하며 살아가는 삶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과 바나바의 삶이요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요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삶임을 기억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변화된 삶, 구원의 삶, 축복의 삶을 나누고 전하는 자로 서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