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1:25-26

25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다소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은 일 년 동안 줄곧 거기에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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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순교와 예루살렘 성에 믿는 성도들에 대한 큰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을 떠나 지금의 터어키 남부 도시인 안디옥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 특별히 헬라 그리스인들에게 전했을 때 놀랍게도 하나님의 손길이 그들과 함께 함으로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헬라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듣고 바나바를 보내 그들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고 믿어 구원 받았는지를 확인시키러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그들에게 내린 것을 확인하고 기뻐하였고 믿은 모든 사람들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1:20-23절의 내용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방인들을 단지 지나가는 말로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닌 그곳에 남아 일년간 머물면서 교회에서 모임을 가지고 말씀을 가르칩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리더요 목회자로 일년간 말씀을 가르치게 된 이유나 과정은 성경에서 말해주지 않지만 분명 바나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구원 받아 세워진 안디옥 교회가 말씀으로 굳게 세워져야 할 필요를 보았기에 예루살렘 교회와 상의한 후에 결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자신이 혼자 안디옥 교회 성도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보다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리고 와서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말씀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함을 받을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한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교회 일곱 집사 중에 한 사람인 스데반을 사울이 죽이는 앞장섰던 사람이며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을 크게 핍박한 사람이었고, 더 나아가 시리아에 수도인 다마스쿠스 성까지 가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붙잡아 오려고 갔던 사람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다마스쿠스 성으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를 하고 놀랍게도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사울이 예루살렘 성에 가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고자 했을 때 사도들이 사울이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피하였을 때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제자들에게 가서 사울을 믿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철저한 바리새인이요 율법주의자요, 유대인의 철저한 선민 사상에 사로 잡혀 있었고, 그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와 성도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철저하게 핍박했던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 그리스도이시며,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가 바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요, 죽음 후에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고 다시 재림하여 심판주로 오실 주님임을 분명히 깨닫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또한 다소 사람이요 헬라 문화와 말에 능통하다는 것을 알기에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말씀을 가르치는데 적합자임을 알았기에 그가 있는 다소로 가서 사울을 설득하고 함께 안디옥 교인들을 가르치기 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나바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많은 믿음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토요일 말씀에서 나누었지만 그는 착한 사람, 위로자였습니다. 교회의 필요를 알고 자신의 밭을 팔아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연결자였습니다. 사울을 믿어주고 다른 사도들이 믿어 줄 수 있도록 설득하고 이끌어 준 사람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나아오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는 자, 믿는 성도들을 굳게 설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치는 자였습니다. 바나바는 단지 지식적인 말씀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들은 자들이 삶속에 그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친 자였습니다. 그렇기에 26절에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누구의 제자였습니까? 물론 예수를 믿어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었지만 2차적으로 본다면 바나바에게 말씀을 배운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이 성도들이 바나바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로 쓰인 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표현으로 말하면 예수쟁이라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는 말로 쓰는 말이 예수쟁이입니다. 예수 밖에 모르는 사람, 예수에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는 말로 붙여진 말이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 예수님의 뜻과 말씀대로만 살아가는, 세상과 구별되어 바보스럽게 손해보고, 섬기고, 예배드리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부른 이름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자로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26절에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었다” 라는 말씀이 도전이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는 자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주변의 사람들에 “말씀을 많이 아는 자다, 교회를 다니는 자다, 교회를 섬기는 자다” 라고 불리는 것보다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 즉 예수쟁이다. 예수 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다” 즉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다, 믿는대로 살아가는 자다 ” 라는 말을 듣는, 예수 믿는자로 바른 인정을 받는 자로 서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 아닌, 종교를 기독교로 택한 종교인이 아닌, 진정 믿는 예수님, 배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림 받고 인정 받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별 의미없는 호칭일 수 있지만 진정 복음을 바로 알고 진리를 바로 아는 우리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단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고 불러 주는 정도가 아닌 진정 그리스도인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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