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1:22-24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소식을 듣고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다.
23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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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1장의 말씀은 사도행전 1:8절에서 주님께서 명하신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명하신 말씀이 성취되어 가는 성령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회개와 부흥의 역사를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집니다. 날마다 모여서 말씀과 기도의 삶을 삽니다. 점점 더 부흥해 가지만 여기가 좋사오니, 우리끼리 지금이 좋사오니 라는 신앙으로 자리 잡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예루살렘 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만 복음이 전해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함께 큰 박해와 핍박을 허락하심으로 강제적으로 성도들을 각 지방, 각 나라로 흩으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8장을 보면 대표적으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그곳에 가서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성령을 받으며 온 유대에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여전히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하나님께서 깨우치시기 위해서 사도 베드로를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 가정으로 보내 그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께서 하신 섭리요 역사라는 것을 베드로가 설명했을 때 사도행전 11:18절에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에게도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 사건과 함께 흩어진 성도들 가운데 터어키 서남부 지역에 있는 안디옥으로 간 성도들이 자신들의 정착과 살 것에 우선을 두지 않고 도착하여 그곳에 사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내 그리스 사람들이 진정 복음을 바로 듣고 믿었는지 확인하러 보냈을 때 바나바가 가서 보았을 때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즉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분명히 보고 기뻐하였고, 믿는 자들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한 내용이 23절의 말씀입니다. 다시 한번 23절을 보면 “바나바가 가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였고, 모든 사람에게 굳센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하였다”
그렇게 되어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방인들, 그리스인들이 중심이 된 그리고 이스라엘이 아닌 페니키아 즉 지금의 레바논에 세워진 첫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선교사를 처음 파송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할 신앙과 사역을 감당한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 교회를 돕고 섬긴 귀한 사역을 감당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24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바나바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주님께 나아왔다라고 말합니다. 바나바를 통하여 구원 받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나바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4:36-37절에 먼저 나옵니다.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실제적으로 마음만 아닌 행동으로 돕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생기고 그 성도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이 많은 것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밭을 가장 먼저 팔아서 그 돈을 구제 헌금으로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처음 소개할 때 바나바는 위로와 구제하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두 번째 바나바에 대해 알려 주는 말씀이 사도행전 9:26-28절에 나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거기에 있는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사울이 제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서 모두들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을 맞아들여 사도들에게로 데려가서, 사울이 길에서 주님을 본 일과,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예루살렘을 자유로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말하였다”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데 주동이 되었고 그 후 교회와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 만난 후에 회개하고 성령의 깨달음으로 이단이라도 확신하고 핍박했던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그리스도와 메시야가 되심을 깨닫고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여 데리고 가려고 했던 다마스쿠스 성에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사울의 놀라운 변화에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던 종교 지도자들이 당황했고 사울의 열심과 개종이 그들에게 도리어 방해가 되자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러자 다마스쿠스의 성도들이 사울을 피신시켜 성문 밖으로 바구니를 태워 도망치게 합니다. 그러자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사도들을 만나려고 하자 사울의 개종과 변화를 믿지 못하고 여전히 두려워하여 만나주지 않을 때 사도들을 설득시킨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위로자에서 이제는 믿음의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연결자로 서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1장에는 안디옥에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 받은 성도들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곳에 그들의 믿음과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보냄을 받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빌립 집사로 인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직접 가서 확인했는데 바나바를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바나바에게 분명한 복음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바나바는 위로자에서 영혼을 세우고, 믿어주고, 연결시켜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이라는 이방 나라의 도시에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교회가 들었을 때 바나바를 보내어 확인하고 확증하도록 할 정도로 교회의 리더가 되었고 24절을 보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라고 말합니다. 점점 더 교회의 일군이요 복음의 전파자로 세워져 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나바와 같은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위로자요 연결자요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오는 복음의 도구요, 복음의 일군이 되기를 원합니다.
24절 보면 바나바에 대해 설명하면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 라고 말합니다.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의 밭을 팔아서 바쳤으니까 당연히 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가 착한 사람이라고만 한 것이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라고 말합니다. 즉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그의 성품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줄 알고 자기 재산을 팔아서 나누어줄 줄 아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나바에게 물론 착한 성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인 성품이나 기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명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역사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이루십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셨을 때 믿음으로 반응할 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 다른 것이 아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민족들의 높은 성과 그들의 크고 장대한 신장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철병거들을 보고 “우리를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과 기준으로 볼 때 맞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선포하고 나아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믿음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들어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사르밧 과부의 집에 3년 가뭄동안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은 것, 태어나면서 소경된 자가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어 눈을 뜨게 된 것 …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삶에, 우리의 삶에, 우리 교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기준과 판단을 가지고 “된다, 안된다. 하자, 말자” 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시간과 재정과 건강과 그 모든 상황과 여건을 넘어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모습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때 나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때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손길을 깨닫고 믿음으로 선포하며 담대하게 주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순종은 반드시 성령님의 충만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역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24절을 다시 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주님께로 나아왔다”우리는 단지 착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착함이 단지 성품으로가 아닌 성령과 믿음의 충만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를 믿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나바가 위로자였고, 연결자였고,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한 사람으로 쓰임 받은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이 이 시대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그러한 위로자, 연결자, 착함과 믿음과 성령의 충만함으로 많은 사람을 주께 돌아오게 하는 삶과 신앙,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