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방주 / 구원으로 인도하는”(창세기 6:11-22)
하나님께서는 무법천지가 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방법, 구원의 길인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심판하시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과 멸망이 아닌 구원하심입니다. 회복케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만들라고 그려주신 방주의 첫 번째 특징은 넉넉함이었습니다. 각각 모든 종류의 동물들이 쌍으로 들어가고 1년간 지낼 때 필요한 음식을 충분히 실어도 넉넉할 정도로 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의 방주는 넉넉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에 넉넉했다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홍수가 났을 때 노아의 가족 8명만 살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가족만 살아남은 것은 노아의 방주가 8인용 방주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방주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주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구원을 주는 노아의 방주는 넉넉했지만 노아 방주의 두 번째 특징은 문이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의 문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방주, 천국에 들어가는 문은 오직 하나뿐인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사도행전 4:12절에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예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문입니다.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노아 방주의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신 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주를 만들라고 한 청사진을 보면 배에 운전대가 없습니다. 돗대가 없습니다. 노가 없습니다. 키도 없고 운전대로 없습니다. 그저 사각형의 나무 상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방주는 홍수에서 안전했습니다. 그리고 안전하게 아라랏 산에 도착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와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인생의 방주를 준비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축복의 길이고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영혼들을 살릴 수 있도록 강권하여 구원의 방주로 데려와서 함께 구원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는 바보 같은 모습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상적인, 인간적인 이성과 논리에 바탕된 교회가 아니라 말씀의 원리에 기초한 구원의 방주가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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