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로마서 11:33-36
33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님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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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묻는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은 질문이 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만들어 놔서 아담과 하와로 죄를 짓게 했습니까? 선악과만 만들지 않았다면 죄를 짓는 일은 없었을 것 아닙니까? 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서 가나안의 많은 족속들을 다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내리셨습니까?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했고 전도사로 목사로 사역을 하고 성경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 있지만 저 역시도 하나님에 대해 풀리지 않는 많은 부분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열왕기상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의 왕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왕으로 있다가 죽기도 하고 아버지 왕이 우상을 섬기다 죽었으면 그 대에서 끊겨야 되는데 그 아들이 또한 대를 잊고 또 악을 행합니다. 그리고 수십년을 왕으로 지내다가 아무 어려움 당하지 않고 자연사 합니다. 제가 하나님 같으면 바로 문둥병을 주고 암에 걸리게 하고 또는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내려서 징계할 텐데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아합 왕.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악한 왕 아니었습니까? 3년 반 동안 아합 왕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살려두십니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놔 두십니다. 아람 나라에서 수십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아합 왕으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아합을 도우십니다. 두 번이나 승리를 얻게 하십니다. 그런데도 아합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겼는데도 아합 왕을 즉시 벌하지 않으시고 수년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인을 그대로 내 버려두시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시는가?
개인적으로는 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빨리 회복시키시고 부흥케 하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열심히 섬기는 성도님들에게 어떠할 때는 중병에 들게 하셔서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가? 왜 저 성도를 강권적으로 인도하지 않으시는가? 등등의 질문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질문 속에 하나님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인가를 곰곰이 묵상해 볼 때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바로 로마서 11:33절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생각하고 계산하고 이해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 고백한 고백이 바로 본문의 고백입니다. 33절을 개역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사도 바울이 고백한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만이 아닌 이방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이방인이었던 그들, 나무에 붙어 있지 않았던 돌감 나무 가지를 원 가지에 젖붙임을 받아서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된, 즉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고백한 고백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도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고 그 보혈의 은혜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우리가 다 어떻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통하여 이방인이었던 우리들, 죄인이었던 우리들, 하나님과 원수되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우리들, 아니 죄가 무엇인지도, 죄인인지도, 우리의 운명이 어떠한 저주를 받는 운명인지도 모르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다 이해하고, 설명하고,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은 어떠한 마음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생각지 못한 어려움이나 문제들, 사고와 갈등, 손해보는 일과 억울한 일들을 만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상황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어도 그 말이 가슴으로,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을 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의심되는 때가 있지 않습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니까 2023년도 이 지구에 인구가 80억입니다. 차고 넘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실 시간이나 있으실까?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교회에서 성도님들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으면 목사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기도하는 것 보다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시면 하나님께서 더 잘 응답해 주시고 더 축복해 주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나보다 더 사랑하시고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목사님이 기도하시는 것이 내가 기도하는 것 보다 더 빠르고 더 잘 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신 것 같습니다.
80억의 인구가 있는데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독교 인구를 1억 정도로 잡아도 엄청난 숫자인데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기도, 나의 상황, 내 신음을 들으실까? 여러분 그런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나같이 보잘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나이든 사람도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질까? 성경에서 하나님은 그렇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60억분의 1의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1:1로, 한 사람으로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시편 139편 13절에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계십니다.“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아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다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께서 태초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어머니의 모태에서 나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우연히 이 땅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하심과 천하보다 귀하게 사랑하심으로 태어난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최고의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시고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고자 하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깊이 깨닫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사랑하시는 마음이십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매일 매일 기억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삶에 담대함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시고 나의 빽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알 때 삶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상황만 보고 내 모습이 보잘 것 없다고 움츠리는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입니다. 예레미야 29:11-1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보통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사랑하십니다. 그 아들을 대신하여 죽게 하기 까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우리의 삶을 강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늘 감격과 감사, 담대함으로 2024년도 새해를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