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9:24-27

24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사람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리십시오.
25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6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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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을 신앙의 경주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뛰어가야 할 목표가 있는 경주자입니다. 승리를 향해 앞을 향해, 목표를 향해 힘껏 달려 하늘의 상을 받는,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시는 자들입니다.

신앙의 경주자들은 승리를 목표로 앞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무겁고 얽매이는 세상의 것들, 죄의 습관들을 버리고, 뒤엣 것은 잊어 버리고 승리와 하늘의 상을 향해 더욱 힘을 내어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둘째, 절제해야 합니다. 25절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절제를 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모든 일에 무엇을 한다고요? 절제합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상을 받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먹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왜 살이 찝니까? 먹는 것을 절제하지 못해서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돼지는 정말 많이 먹는다고 생각합니다. 먹어야 할 양보다 더 많이 먹는 동물이 돼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돼지는 자기 위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의 양에 80% 밖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돼지는 소화불량이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위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의 170%를 더 먹는다고 합니다. 돼지라고 불려야 할 동물은 돼지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려고 해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공부를 잘하려고 해도 노는 것을 절제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하려고 해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어떤 절제가 필요합니까? 가장 필요한 절제가 바로 감정의 절제입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대로 말하고, 화내고, 결정하는 사람은 절대 절제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운동선수가 게임할 때 흥분하면 집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상대를 지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전략적으로 흥분하게 하는 말과 행동들을 합니다. 거기에 넘어가서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흥분하면 지는 겁니다.

하나님께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라고 택함 받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감정을, 분노를 절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노한 것 인간적으로 이해할 만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원망과 불평이 많은 백성들이었습니까? 수없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동안 잘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번 마실 물이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민수기 20:9절에 “바위에 명하여 물을 내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모세가 백성들을 향해 분노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10절을 보면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라고 알려 줍니다.

모세의 이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행동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12절에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만큼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총회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하는 큰 죄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그렇게 원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까? 분노를 참지 못할 것입니다. 수많은 살인사건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철저하게 계획해서 살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감정을 절제하지 못해서 순간적으로 살인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면 절대 승리하지 못합니다. 절대 성숙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분노함을 그대로 쏟아 내는 사람들로 인해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교회에 다툼과 싸움, 깨어짐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영적인 살인과 깨트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처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모세처럼 감정과 분노를 절제하지 못할 때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결과가 있습니다. 절제함의 신앙이 있을 때 하늘의 상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경주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절제해야 합니까? 시간을 절제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 바쁘다 라고 하지만 내가 하고픈 것, 내 원하는 것에는 절제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쓸데없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습니까? 내 욕심을 절제해야 합니다. 게으름을 절제해야 합니다. 분노함을 절제해야 합니다. 해서는 안되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도록 절제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죽이는 삶입니다. 뒤에 붙어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를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내 욕심을 죽이고, 내 뜻대로 사는 것을 죽이고, 내 고집을 죽이고, 내 의를 죽이고 사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동차에 비유한다면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가 질주하면 어떤 결과나 생기겠습니까? 매번 사고 내는 겁니다. 매번 부딪히는 겁니다. 새해에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게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절제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경주자는 목표가 분명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26절 “그러므로 나는 목표 없이 달리듯이 달리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경주자는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분명한 목표를 알고 달립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결단하고 행동합니다.

여러분은 2024년 새해를 맞으면서 어떤 목표를 정하고 무엇을 하겠다고 결단하셨습니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겠다는 결단, 하나님의 말씀대로 더욱 순종하겠다는 결단, 성령의 열매, 예수님의 성품을 더 닮겠다는 결단, 말에 실수하지 않겠다는 결단, 더 이상 입에서 원망과 불평,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험담을 하지 않고 오직 감사와 찬양의 입술이 되겠다는 결단, 사랑의 사람, 섬김의 사람으로 변화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앙의 경주자, 하늘을 향해,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달리는 경주자로 부르셨습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첫째, 승리를 목표로 앞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둘째, 절제해야 합니다. 신앙의 경주자는 세 번째, 경주자는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결단을 해야 합니다. 2014년 새해 오늘 말씀을 통해 상을 받는 경주자로 앞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 하늘의 상을 받으며 놀라운 삶의 변화와 하나님이 능력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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