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2:1-9
1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하수에로 왕은, 분노가 가라앉자 와스디 왕후가 생각나고 왕후가 저지른 일과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조서까지 내린 일이 마음에 걸렸다.
2 왕을 받드는 젊은이들이 이것을 알고 왕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을 모실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찾아보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3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각 지방에 관리를 임명하시고, 아리땁고 젊은 처녀들을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데려오게 하시고, 후궁에 불러다가, 궁녀를 돌보는 내시 헤개에게 맡기시고, 그들이 몸을 가꿀 화장품을 내리십시오.
4 그리 하신 뒤에, 임금님 마음에 드는 처녀를 와스디 대신에 왕후로 삼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왕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하였다.
5 그 때에 도성 수산에는 모르드개라고 하는 유다 남자가 있었다. 그는 베냐민 지파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야일이고, 할아버지는 시므이이고, 증조부는 기스이다.
6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에, 함께 잡혀 온 사람이다.
7 모르드개에게는 하닷사라고 하는 사촌 누이동생이 있었다. 이름을 에스더라고도 하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므로, 모르드개가 데려다가 길렀다. 에스더는 몸매도 아름답고 얼굴도 예뻤다. 에스더가 부모를 여의었을 때에, 모르드개가 그를 딸로 삼았다.
8 왕이 내린 명령과 조서가 공포되니 관리들은 처녀를 많이 뽑아서 도성 수산으로 보내고, 헤개가 그들을 맡아 돌보았다. 에스더도 뽑혀서 왕궁으로 들어가 궁녀를 맡아 보는 헤개에게로 갔다.
9 헤개는 에스더를 좋게 보고, 남다른 대우를 하며, 곧바로 에스더에게 화장품과 특별한 음식을 주었다. 또 궁
궐에서 시녀 일곱 명을 골라, 에스더의 시중을 들게 하고, 에스더를 시녀들과 함께 후궁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옮겨서, 그 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
에스더서 2장은 “이러한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아하수에로 왕은 분노가 가라앉자 와스디 왕후가 생각나고 왕후가 저지른 일과 그리고 그것 때문에 자기가 조서까지 내린 일이 마음에 걸렸다”라고 시작합니다. 1장에서 보았듯이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자랑하며 과시하기 위해 127개 주의 모든 장관과 관원들을 불러 180일간의 잔치를 했습니다. 그런 중에 자신의 아내인 와스디 황후의 아름다움도 과시하기 위해 술취한 신하들 앞에 나오라고 명을 했지만 그 명을 거부합니다 그로 인해 분노하는 왕에게 와스디 황후의 처사는 왕과 남편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가만두어서는 안된다는 신하들의 조언을 듣고 와스디 황후를 폐위하는 조서를 감정대로 내렸었습니다.
그런 일을 한 후에 결국 분노가 가라앉자 아하수에로 왕은 아름답고 지혜로웠던 왕비를 자신의 순간적인 분노함과 잘못된 처사로 폐위를 한 것을 후회를 합니다. 미련한 자의 분노함을 절제 하지 못하고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면 결국 후회하게 됩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마음에 걸리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자 왕을 곁에서 보좌하는 신하들이 새로운 왕후를 세우는 것을 제안함으로 새로운 왕후를 뽑는 일이 시작됩니다. 세계를 제패하고 다스리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의 왕후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만이 아닌 가문의 큰 영광이고 왕후가 된다는 것은 큰 권력과 힘을 가질 수 있는 일이기에 왕후가 되고자 하는 여인들과 그들의 부모와 가문이 어떤 방법을 해서라고 왕후가 되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엄청난 경쟁 속에서 고르고 골라 세워지게 되는 왕후인데 그 당시 포로요 식민지로 지내는 민족인 유대인 에스더가 어떻게 왕후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러한 상황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하심이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에스더가 세워지는 섭리를 왕후가 세워지는 일 가운데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신하들은, 전국으로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아리따운 젊은 처녀들을 뽑아서 모두 궁으로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궁녀를 주관하는 헤게에게 맡겨서 어느 시간동안 몸을 가꾸게 하고 왕의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를 수 있도록 합니다. 그 궁에 뽑혀서 오게 된 여인 중에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남 유다를 멸망시킬 때 예루살렘에서 포로들을 끌고 왔을 때 그의 부모의 가족들이 잡혀 갔었고 일찍 부모를 여의었기에 그의 삼촌 모르드개가 거두어서 딸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상황을 6절에 “그는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그의 백성을 포로로 끌고 왔을 때에, 함께 잡혀 온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에스더의 인생은 포로로 끌려 왔고, 잡혀온 사람이었기에 이방 땅에서 정착한 힘없고 약한 식민지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인생가운데 휩쓸려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나라가 패망하여 부모들이 포로로 끌려 왔고 얼마 되지 않아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되어 삼촌 손에 길러진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불쌍하고 참담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생각지 못하게 왕후를 새로 프로젝트에 뽑혀서 궁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역시 여자는 일단 예뻐야 인생이 풀린다” 라고 생각하는 하실지 모르지만 사실 궁에 뽑혀온 젊은 여자들,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넘쳤겠습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여인들은 미모로 출세를 해 보자는 마음, 혹은 부모나 가문이 딸을 통해 지위 상승이나 세력을 얻고자 하는 정치적 야심을 가졌겠지만 모르드개나 에스더는 그러한 야망이나 야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모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포로요, 고아였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궁으로 끌려 온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나의 야심이나 야망을 가진 자를 쓰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왕자로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돕고 구원하고자 했을 때 쓰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끌려 왔다, 잡혀 왔다”라고 한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셨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아 노예로 팔려 끌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요셉을 결국 이집트와 그 주변의 나라, 야곱의 가족들까지 기근에서 구원하는 구원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다니엘도 바벨론에 끌려 갔을 때 그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다윗도 어쩔 수 없이 광야로 끌려 나가게 됩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좋은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헌신과 수고와 상관없이 어떠한 때는 “끌려옴”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처한 상황들이 내가 선택한 것보다 끌려 왔다고 느껴질 때가 많지 않습니까? 세상적인 기준과 시각으로 볼 때는 절망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미워하고 비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음을 우리는 에스더를 통하여 보게 됩니다.
비록 에스더가 아름다운 미모로 인해 궁전으로 들어 왔지만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자신을 돕고 밀어줄만한, 믿을 만한 빽도 없습니다. 가문도 없습니다. 배운 것도 없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9절입니다. “헤개는 에스더를 좋게 보고, 남다른 대우를 하며, 곧바로 에스더에게 화장품과 특별한 음식을 주었다. 또 궁궐에서 시녀 일곱 명을 골라, 에스더의 시중을 들게 하고, 에스더를 시녀들과 함께 후궁에서 가장 좋은 자리로 옮겨서, 그 곳에서 지내게 하였다”
헤게는 왕이 있는 궁궐 안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헤게가 에스더를 좋게 보고 남다른 대우를 하도록 배려 합니다. 왜 그랬을까를 9절의 영어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절에 “헤게는 에스더를 좋게 보고 남다른 대우를 하며” 라고 하는 구절이 영어로 보면 “The girl pleased him and won his favor”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에스더가 그를 기쁘게 했고 그의 호의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땅에 끌려 왔습니다. 더 나아가 원하지 않는 궁전에 끌려 왔습니다. 자신의 삶을 한탄하고, 혹은 상황과 다른 사람 혹은 자기 인생을 원망하고 절망할 수 있는 상황인데 에스더는 그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모습과 태도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과 태도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감사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 행하라고 주어진 임무를 최선을 다하여 순종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닌 그 마음이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을 헤게가 보고 느꼈기에 기뻐했고 그로 인해 에스더에게 남다른 배려, 호의, 은혜를 베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상황에 끌려가는 인생으로 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끌려갔지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믿고 충성을 다하여 주인에게 인정받았던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원하지 않는 곳에 끌려온 것 같고,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던져진 것 같아 보일 때 그 상황 속에서 우리가 보여야 할 믿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에스더의 인생처럼 포로로, 노예로 이끌려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망하는 마음, 좌절하고, 낙담하고, 탓하는 마음이 들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시고자 하시고, 우리를 구원의 도구로 쓰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헤게를 기쁘게 한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믿음의 삶인 순종과 배려와, 섬김과 충성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 용기와 믿음, 영적인 시각으로 살아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