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된 만남” (요한복음 17:9-11절)
우리는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내가 축복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축복할 새로운 만남을 원합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소망 가운데 축복된 만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과거의 만남, 현재의 만남을 축복으로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가족, 교회 성도, 친구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만남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 줄것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성은 누군가 10번 잘해주다가 한번 잘못해 주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리라”그렇기에 축복된 만남을 기다리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는 우연히, 가만히 있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함 속에, 인내함 속에, 사랑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축복의 만남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사건이 바로 그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약 두 세시간 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그 상황에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부인하고, 배신할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섭섭한 마음과 실망한 표현이 나올 것 같은데 도리어 그들을 축복하는 기도를 합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우연히 만난 것 아닌 하나님의 뜻 가운데 그들을 만나시고, 택하시고, 사랑하시며 지금은 부족하지만 결국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의 계획인 복음 전파를 하실 것을 믿었기에 십자가 위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다시 그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 주시고 그들을 사명자의 삶, 축복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길을 따라가면서 누군가 나에게 잘 해주겠다 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다가 실망하며 미워하며 원망하는 삶이 아닌 나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김으로, 오래 참음으로, 기도로 축복의 만남으로 만들어 가리라”내가 먼저 밝게 인사하고, 손을 내밀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축복의 만남이 되게 하겠다는 결단으로, 예수님이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행하신 용서와 화목과 행복의 길을 열어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