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야고보서 1:1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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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부터 몇주간 야고보서 말씀으로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신약이 27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책이라기 보다는 대부분이 편지입니다.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누가 그 편지를 썼고, 누구에게 썼고, 왜 썼는가에 대한 배경을 알고 읽으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야고보서에 대한 저자와 수신자, 그리고 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야고보서는 누가 썼습니까? 야고보가 썼습니다. 성경에 여러명의 야고보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두 사람이 야고보입니다. 마태복음 10:2-3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첫째로 베드로라고 부르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도마와 세리 마태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와 열혈당원 시몬과 예수를 넘겨준 가룟 사람 유다이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야고보가 쓴 편지가 아닙니다.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바로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쓴 편지입니다. 마가복음 6: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고 말씀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그는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닌가?”하지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을 메시야나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7:3-5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형님은 여기에서 떠나 유대로 가셔서, 거기에 있는 형님의 제자들도 형님이 하는 일을 보게 하십시오. 알려지기를 바라면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형님이 이런 일을 하는 바에는, 자기를 세상에 드러내십시오. 예수의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야고보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간 기적과 천국의 복음을 전하며 제자들과 다닐 때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형을 미쳤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마가복음 3:21 “예수의 가족들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그를 붙잡으러 나섰다”
한번 야고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동생 야고보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야고보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예수님의 동생입니다. 저는 형이었던 예수님 때문에 야고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이 탁월한 경우 동생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 말썽을 부렸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모의 말에 늘 순종했을 것입니다. 특히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으로 태어난 메시야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쏟았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완벽하여 부모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형.
형이었던 예수님 때문에 야고보는 관심도 덜 받았을 것이고 칭찬과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애도 써 보았겠지만 형보다 잘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은 형이나 언니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따르고 존경하기 보다는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그래서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내내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미쳤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쓰는 더 나아가 예루살렘 교회의 1대 목회자로 세워집니다. 복음서나 그 외의 성경에서는 사울이 바울이 된 것처럼 다메섹에서의 사건 같이 야고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 회심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유추해 보면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회심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다가 오순절의 역사, 성령님을 받을 때 야고보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 고린도전서 15:3-7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대부분 여러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만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야고보는 혼자 만나주신 것 같습니다.
십자가에 죽었던 형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동생 야고보를 만나 주셨을 때, 더 나아가 오순절의 성령님의 내리심을 경험했을 때 야고보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놀랍게도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요 목회자로 야고보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목사가 된 야고보가 나중에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감옥에 넣고 죽였던 바울을 받아 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야고보가 아니었다면 바울이 바울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할례의 문제로 대립이 되었을 때 야고보는 바울을 지지하여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 기록들을 보면 야고보는 기도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던지 그의 무릎에 굵은 살이 많이 배겨서 사람들이 그의 별명을 낙타무릎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목회자요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이었기에 예수를 부인하고 핍박하던 유대인들이 야고보를 붙잡아 죽였습니다.
그러했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합니다.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가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을 드립니다”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쉽지 않은 표현입니다. 어릴 때부터 같은 밥을 먹고 같이 생활했던 형,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시기, 더 나아가 예수님의 공생에 동안 형을 미쳤다고 했던 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자기 형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며 자신을 그의 종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어떻게 쉬웠겠습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분이 부활하심을 보고,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이 단지 자신의 형이 아닌 만물의 주인이시며, 생명의 주님이신 구세주와 주님으로 깨달았기에 자신이 예수님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연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고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은 진실로 예수님을 만났는가입니다. 정말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이시고 나의 의를 위해 부활하신 예수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나를 사랑하시고 내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났습니까? 다른 사람이 말하는 예수가 아니라, 머리로, 역사적으로 아는 예수가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정말로 만나셨습니까? 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을 향해 야고보와 같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이라고 고백하십니까? 그 고백처럼 당신의 인생, 당신의 시간, 당신의 물질, 당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인정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십니까?
야고보서는 행함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믿음은 행함이라고 선포하는 책입니다. 믿음은 순종이라고 선포하는 책입니다. 그 믿음의 행함은 내 생각, 내 뜻, 내 원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 바로 주인이시고 내가 종인가를 인정함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가 예수님을 만났고, 바로 알았기에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주님이고 나는 그분의 종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