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9:4-15
4 그의 장인 곧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그를 붙들므로, 그는 사흘 동안 함께 지내며 먹고 마시면서,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5 나흘째 되는 날, 그가 아침 일찍 깨어 떠나려고 일어서니,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사위에게 말하였다. “빵을 좀 더 먹고서 속이 든든해지거든 떠나게.”
6 그래서 그들 두 사람은 또 앉아서 함께 먹고 마셨다.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사위에게 말하였다. “부디 오늘 하룻밤 더 여기서 묵으면서 기분좋게 쉬게.”
7 그 사람은 일어나 가려고 하였으나, 그의 장인이 권하여 다시 거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8 닷새째 되는 날 아침에 그가 일찍 일어나 떠나려고 하니,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권하였다. “우선 속이 든든해지도록 무얼 좀 먹고 쉬었다가, 한낮을 피하여 천천히 떠나게.” 그들 둘은 또 음식을 먹었다.
9 그 사람이 일어나 자기의 첩과 종을 데리고 떠나려고 하니, 그의 장인인 그 젊은 여자의 아버지가 그에게 권하였다. “자,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어 가니, 하룻밤만 더 묵어 가게. 이제 날이 저물었으니, 여기서 머물면서 기분좋게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길을 떠나, 자네의 집으로 가게.”
10 그러나 그 사람은 하룻밤을 더 묵을 생각이 없어서, 일어나서 나귀 두 마리에 안장을 지우고, 첩과 함께 길을 떠나, 여부스의 맞은쪽에 이르렀다.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다.)
11 그들이 여부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벌써 하루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의 종이 주인에게 말하였다. “이제 발길을 돌려 여부스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가, 거기에서 하룻밤 묵어서 가시지요.”
12 그러나 그의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안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기브아까지 가야 한다.”
13 그는 종에게 또 말하였다. “기브아나 라마, 두 곳 가운데 어느 한 곳에 가서 묵도록 하자.”
14 그래서 그들이 그 곳을 지나 계속 나아갈 때에,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 가까이에서 해가 지고 말았다.
15 그들은 기브아에 들어가서 묵으려고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들어가 성읍 광장에 앉았으나, 아무도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묵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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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사건은 자신에게 레위인의 첩이 되었던 한 여인이 레위인의 음행으로 화가 나서 자신도 음행하고 난 후에 베들레헴 처갓집으로 돌아가 넉달을 지내고 있을 때 그를 다시 데려가기 위해서 종과 함께 찾아온 사위를 장인이 극진히 대접합니다. 어찌 되었든 행음을 하고 돌아온 딸을 데리러 와준 데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딸의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해달라는 애원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찌하든 자신의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딸을 바로 데려가게 하지 않고 4일 동안을 반복해서 강권하여 머물게 하고 극진히 대접한 것입니다. 잘 대접해야 자기 딸을 버리지 않고 그래도 잘 대해 줄 것이라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하고 돌아온 딸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에게는 변함없이 소중한 딸인 것입니다. 아내가 사랑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 여인의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도, 원수가 되었을 때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구하시고 살리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요 사랑이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단지 나만이 아닌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이 있을 때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편하다고, 만만하다고, 막 대해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적으로 사랑받지 못할 사람, 아니 비난과 정죄, 내쳤으면 좋을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가 딸을 위해 레위인을 극진히 대접했던 마음으로 그 영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레위인은 그러한 장인의 마음과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흘간 머물며 극진한 대접을 받고 드디어 다섯째 되는 날 종과 첩을 데리고 다시 에브라임 산지로 돌아가게 됩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여부스 즉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렀을 때 벌써 하루 해가 저물었고 그의 종은 여부스 사람의 성읍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어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여부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는 성읍이 아닌 이방인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렇기에 12절에 레위인은 “안 된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기브아까지 가야 한다” 라고 거절합니다. 그것은 아마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집에 머물 수 없다는 종교적인 이유, 다른 민족에 대한 배척 사상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에 들어가서 묵으려고 그 성읍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그런데 15절을 보면 “그들은 기브아에 들어가서 묵으려고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들어가 성읍 광장에 앉았으나 아무도 그들을 집으로 맞아들여 묵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레위인은 그의 종과 첩을 데리고 기브아에서 머물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 당시 호텔이나 모텔같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읍 광장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읍, 동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보고 누군가 그를 자신의 집으로 영접해서 유숙하게 하는 것이 율법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레위인 일행을 영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도 레위인을 영접하여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의 끝으로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불순종하는 모습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더 자기 욕심과 편함, 이기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살아간 것입니다. 기브아 사람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던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시된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명령을 모두가 무시하고 신경쓰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손님을 대접하고, 성도들을 대접하는 일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점점 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섬기려고 하기 보다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섬기는 자, 베푸는 자로 서야 합니다. 내 배를 채우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것을 챙기는 자가 아닌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이름으로, 더 나아가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자, 베푸는 자,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라고 축복하는 자로 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