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4:5-9
5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가서, 딤나에 있는 어떤 포도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사자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6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 덮쳤으므로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어 죽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7 그는 그 여자에게로 내려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손은 그 여자를 무척 좋아하였다.
8 얼마 뒤에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러 그 곳으로 다시 가다가 길을 벗어나 자기가 죽인 사자가 있는 데로 가 보았더니 그 죽은 사자의 주검에 벌 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었다.
9 그는 손으로 꿀을 좀 떠다가 걸어가면서 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 주었으나, 그 꿀이 사자의 주검에서 떠온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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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사건은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하기 위해 부모와 함께 블레셋 여인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내려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들에 대핸 내용입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사사로, 이스라엘을 블레셋 손에서 구원시킬 사명을 받고 태어났고, 신앙의 부모 아래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삶을 훈련 받았던 삼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삼손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 든다고, 내 눈에 보기 좋다고 이방 여인, 블레셋 여인,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하겠다고 타이르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 억지로 부모를 데리고 블레셋 여인의 부모에게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내려가는 것입니다. 삼손은 비록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사요, 나실인으로 드려졌다고 하지만 신분은 사사요 나실인이지만 그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 가운데 살아가는 자가 아닌 자신의 욕심과 정욕, 죄성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힘과 능력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삼손은 하나님께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달리 자기 멋대로 죄의 본능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된 인생,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놀라운 축복의 인생이 아닌 허무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비극의 인생이 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삼손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삼손과 같은 눈에 보이는대로, 자기 소견대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사건은 삼손은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갔던 내용입니다. 삼손의 부모는 삼손의 고집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결혼하고 여인의 부모를 만나러 내려갑니다. 5-6절입니다. “삼손이 부모와 함께 딤나로 내려가서, 딤나에 있는 어떤 포도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갑자기 어린 사자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 덮쳤으므로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 찢듯이 찢어 죽였다. 그러나 그는 이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삼손은 딤나에 내려가 혼자 포도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사자를 만났고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주신 힘으로 삼손은 사자를 맨손으로 찢어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초인적인 힘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삼손은 포도원에 갔고 그곳에서 사자를 만나 죽인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나실인이라면 포도원은 가지 말아야 하는 곳입니다. 포도주나 포도씨, 포도까지도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삼손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자를 죽인 것은 위태로운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자를 죽였다면 그로 인해 나실인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실인으로 죽은 것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부정함을 정하게 하기 위해 정결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8일간 성막을 찾아 제물을 바치며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그런 하나님이 정하신 정결예식을 번거롭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전히 지금 딤나에 와서 결혼을 위해 블레셋 여인과 그의 부모와 가정을 만나 결혼 승낙을 받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포도원에 갔다는 이야기와 포도원에서 사자를 만나 그 사자를 죽인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말을 했다가는 바로 정결예배를 드리러 돌아가자고 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블레셋 이방 여인이, 세상이, 자신의 욕심과 추구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마음에 무엇이 가득 차 있습니까? 무엇이 자리 잡고 있습니까? 무엇이 내 삶을 주장하고, 무엇에 관심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도들 가운데 가서는 안되는 장소, 해서는 안되는 일,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신 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달려가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별히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섬김의 자리, 하나됨을 이루기 위한 자리를 대수롭지 않게 빠지고 살면서도 스스로 신앙이 좋은 듯 망각하며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이 시대 나실인임을 깨닫고 그 신분과 그 사명에 합당한 믿음과 순종,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며 힘쓰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도전합니다.
삼손과 그의 부모는 첫 번째 딤나에 가서 블레셋 여인의 부모와 결혼을 합의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을 위해 두 번째로 내려갑니다. 그것이 8-9절입니다. “얼마 뒤에 삼손은 그 여자를 아내로 맞으러 그 곳으로 다시 가다가 길을 벗어나 자기가 죽인 사자가 있는 데로 가 보았더니 그 죽은 사자의 주검에 벌 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었다. 그는 손으로 꿀을 좀 떠다가 걸어가면서 먹고, 부모에게도 가져다 주었으나, 그 꿀이 사자의 주검에서 떠온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삼손이 다시 블레셋 땅 딤나에 내려갔을 때 전에 자신이 죽인 사자가 있는 포도원을 호기심에 또 가봅니다. 그런데 삼손은 놀랍게도 그 사자의 주검에 벌떼가 있고 꿀이 고여 있는 것을 봅니다. 죽은 동물의 시체, 부패되고 썩어가는 냄새나는 사자의 시체에 벌떼가 집을 틀고 있는 것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나실인은 무엇보다 죽은 시신을 만지면 부정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손은 수없이 들어 왔을텐데 그 죽은 사자 주검에 있는 꿀이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떠서 먹었습니다. 하나남의 명령을 어기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부모까지 부정하게 만들면서 어디서 그 꿀을 얻은지 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삼손이 “말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두 번이 나옵니다. 6절에 포도원에 가서 사자를 죽인 일에 대해 “이 일을 부모에게 말하지 않았다” 라고 나오고 9절에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먹고 그 꿀을 또한 부모에게 가져다 주면서 어디에서 꿀을 가져 온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 일이 옳지 않은 일이고 떳떳한 일이 아닌 불순종과 죄됨을 삼손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교회와 성도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는 우리들의 문제가 바로 삼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명령,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데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불순종하고 있기에 마음이 속된 말로 찜찜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적으로 당장 내게 이익이 된다고, 내가 편하다고, 놓고 싶지 않다고 삼손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속이고, 안 그런척, 안 한척 스스로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택함받는 놀라운 신분인 나실인임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모습을 보면 철저하게 자기를 위해,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는 사람임을 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고, 예배도 드리고, 교회도 나오지만 영적으로 보면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고 그저 죄와 육신의 본능대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택하신 사사로 하나님의 율법에 명시된 나실인이 지켜야 할 사항들,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함으로 길들여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에 통제를 받아 그 말씀 안에서 나의 말과 행동, 생각, 결정들을 믿음으로 행할 때 축복된 인생, 승리하는 인생,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행복한 인생, 구원을 위해 쓰임 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하고, 부흥하는 그러한 말씀에, 하나님께 통제 받는 인생, 그러한 성도,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