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19:47-48

47 그러나 단 자손은 그들의 땅을 잃었을 때에 레센까지 올라가서, 그 주민들과 싸워 칼로 쳐서 무찌르고, 그 곳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거기에 살면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레센을 단이라고 불렀다.
48 이것이 단 자손의 지파가 그 가문을 따라 유산으로 얻은 성읍과 그 주변 마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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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7장과 18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여러지파들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더 정복해야 할 땅들을 정하여 나누어 주었을 때 요셉의 두 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 같은 경우에는 그 땅이 우리에게 작고 좋은 땅이 아니며 그 산지 땅에는 거인 족속이 철병거를 가지고 있기에 원하지도 않고 정복할수도 없다고 불평하며 불신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파들은 정복하라고 알려 주신 땅을 차지하기 위해 달려가지 않고 지체하고만 있었습니다. 변질된 신앙의 모습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축복의 땅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는 달랐습니다. 47절입니다. “그러나 단 자손은 그들의 땅을 잃었을 때에 레센까지 올라가서 그 주님들과 싸워 칼로 쳐서 무찌르고 그 곳을 점령하였다. 그들은 거기에 살면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라센을 단이라고 불렀다”새번역 성경에는 47절에 “단 자손은 그들의 땅을 잃었을 때에 레센까지 올라가서 그곳을 점령하였다” 라고 번역했지만 공동번역에는 “그러나 단 후손의 영토가 좁아서 모두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 후손은 레셈으로 쳐 올라가 칼로 무찌르고 그 성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레셈을 단이라는 조상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 불렀다”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이 받은 땅이 그들이 차지하여 살기에 영토가 좁았다고 느꼈습니다. 19장에서 여러 지파가 받은 땅의 성읍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아셀 지파는 22개의 성읍이 기록되어 있고 납달리 지파는 19개의 성읍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에는 몇개의 성읍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술이 없습니다. 하지만 민수기 1장을 보면, 군대를 세는 장면에서 단 지파는 6만 명이 넘는 장정이 있는 지파로 7만 명의 유다지파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지파입니다. 그런데 가장 나중에 땅을 받았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 땅의 크기가 다른 지파와 비교하면 적은 영토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했을 때 단 지파는 받은 땅이 적다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더 정복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더 많은 땅을 정복해서 나갔습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가나안의 땅을 더 얻기 위해서 라센까지 올라가서 거기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과 싸워 물리치고 그곳을 점령하여 그 땅의 이름을 단이라 불렀습니다.

우리의 죄성은 쉽게 불평합니다. 원망하기 쉽습니다. 또한 편한 것을 원합니다. 힘든 것, 새로운 것, 도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머뭅시다” 라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지 않기를 원했던 베드로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문제가 많은 산 밑으로 내려가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이 정도면 됐지”라는 마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내가 이 정도 섬겼으면 됐지, 이 정도 고생했으면 됐지, 이 정도 알았으면 됐지”라는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명하시는 명령들을 보면 한걸음 더 가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 오리를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 10리를 가 주라는 것입니다. 겉옷을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한걸음 더 나아가 속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요셉도 한걸음 더 나아가는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 자기를 노예로 판 형들을 용서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땅과 집과 필요한 것들을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원망과 불평의 감정,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러한 마음과 감정, 죄의 유혹을 이기고 더 나아가는 신앙을 보여야 합니다. 갈렙과 같이 “저 산지를 내게 주소서” 라고 선포하는 신앙,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 지파와 같이, 47절의 모습과 같이 “그러나 단 후손의 영토가 좁아서 모두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단 후손은 레셈으로 쳐 올라가 칼로 무찌르고 그 성을 차지하고 살게 되었다. 그리고 레셈을 단이라는 조상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 불렀다”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시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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