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속에 흐르는 은혜” (마태복음 1:1-17)
마태복음 1장에 쓰여진 예수님의 족보와 예수님의 탄생의 사건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는 장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처음 등장하는 아브라함을 우리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 믿음으로 하지 않은, 믿음의 귀감이 될 수 없는 많은 불신앙의 모습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대로, 상황 따라 살았고, 자신이 살고자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빼앗기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여종 하갈을 첩으로 맞아서 이스마엘을 얻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받았던 다윗 왕 역시 인간적으로 볼 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부하였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했고 충신 우리야를 살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이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된 것은 그들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인간적 기준으로 볼 때 족보에 올릴 자격이 되지 않는 네명의 여인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다말은 죽은 남편의 자손을 잇기 위해 시아버지 유다를 속이고 관계를 가져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던 여인입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요단강 건너에 있던 첫 번째 성이었던 여리고 성에서서 살던 기생이었습니다. 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혐오하고 배척하는 이방여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 올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밧세바는 바로 다윗 왕이 간음했던 신하 우리야의 아내였던 여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받지 못할 사랑, 받지 못할 용서, 받지 못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인시키시고 보여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또한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자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셔서,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고,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천년전 방황과 어둠과 죄악의 역사속의 죄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성탄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성탄에 깊이 묵상하며 평생 그 하나님의 은혜, 성탄의 은혜로 감사와 찬양으로 섬기고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