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하박국 2:1-4

1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2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4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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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버리고 죄 가운데 거하는 남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 당시 더 악하고 포악한 바벨론 나라를 통하여 멸망시키는 하나님에 대해 “아무리 그래도 남 유다보다 더 악한 나라를 통하여 멸망하시고 포로가 되게 하시고, 고통을 받게 하시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과 항의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2:1절에 “내가 초소 위에 올라가서 서겠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나의 자리를 지키겠다. 주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지 기다려 보겠다. 내가 호소한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실지를 기다려 보겠다” 라고 말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아무리 남유다가 잘못을 했어도 더 불의한 바벨론을 통하여 불의한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대답해 보라는 태도로 모두가 보고 들을 수 있는 초소와 망대 위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대답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박국은 파수꾼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2절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묵시란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보여주신 묵시, 즉 계시, 예언의 말씀은 장차 벌어질 바벨론에 의한 남 유다의 멸망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고입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라. 판에 똑똑히 새겨서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라는 판에 똑똑이 새기라는 말씀은 빈말이 아니라 반드시 분명히 그렇게 말했고, 약속했고, 행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여라” 라는 말씀은 고속도로에 붙여진 큰 광고판처럼 누구든지 보고 읽어서 알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나는 그 경고를, 그 예언을,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듣지 못했다, 알지 못했다” 라고 변명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3:7절에 그런 의미로 “참으로 주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을 그 종 예언자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은 예언자들,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경고하시고 알리셔서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듣고도 불순종하며 회개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묵시, 예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갖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참된 믿음이 있을 때 순종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홍수로, 물로 심판하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믿었기에 방주를 만드는 순종과 행동을 했습니다. 눈먼 소경이 예수님을 믿었기에 눈에 진흙을 발라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자 실로암 못을 찾아 내려 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 그로 인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언약을 믿었기에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 이루시겠다고 하신 예언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약이, 예언이 이루어질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 기준, 우리 시간으로 볼 때 더디더라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때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반드시 그 때가 오고야 만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특별히 구원과 심판의 수레바퀴는 천천히 돌아갑니다. 그러나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경고하신대로 심판과 구원의 날이 옵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남김없이 다 심판하여 멸망당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는 반드시 놀라운 구원의 축복,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렇기에 3절에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되어야 이루어진다. 끝이 곧 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연한 말이 아니니, 비록 더디더라도 그 때를 기다려라. 반드시 오고야 만다.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우리의 때와 다릅니다. 주님께서 왜 하루속히 오시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합니다. 말세라고 하는데 왜 세상의 끝이 오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사실 고통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9절에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심판이 더디다고 방심하지 말고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때 빨리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날, 구원의 날이 더디다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교만한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마음이 한껏 부풀어 살아갑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앞에 바로 서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결국 멸망입니다.

하지만 의인, 즉 구원 받는 자는 믿음으로 사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4절의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말씀을 신약 로라서 1:17절에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11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착한 행위를 통하여 의로움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선한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도덕적인 행위를 지키는 자를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인과 죄인은 세상적인 기준과 다릅니다. 무엇을 좇아 사는가? 삶의 방식, 삶의 가치관이 무엇인가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좇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십니다.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사는 게 죄라고 하십니다.

4절에‘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라고 말씀의 의미는 정직은 인간의 한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교만과 거짓은 자신의 유한성을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과 권력, 자신의 힘과 능력, 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입니다.

반면에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4절에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라는 말의 ‘산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 길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두 번째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는 말의 의미는 절망 중에도 소망을 빼앗기지 않는 믿음입니다. 시편 37:23~24을 보십시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 믿음의 사람도 넘어지고 낙심합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주님을 붙잡는 행위나 내 공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여전히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분명한 진리를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35~39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이 믿음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소망이 사라진 것 같은 절망의 순간, 일상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위기의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사라지는 것 같은 죽음보다 무서운 절망의 순간에도 우리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약속과 예언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인내의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로 서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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