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6:11-16
1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직접 이렇게 큰 글자로 적습니다.
12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3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14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15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16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
본문 11-18절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먼 이방 땅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을 믿고 받아 들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먼 나라의 촌 동네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라는 분이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그 분이 인간의 모든 죄의 형벌을 대신 갚아 주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동정녀에게 태어 나시고 그 당시 로마 제국에서 반역을 일으키는 죄인을 죽이는 십자가 위에 달려 죽임을 당한 그 예수가 죽은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다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말, 그리고 그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을 믿고 예수를 따르는 성도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기뻤겠습니까? 그 교회와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했겠습니까?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은 갈라디아 교회 안에 들어와 십자가 복음이 아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에 넘어가 십자가의 복음을 저버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닌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자 하는 율법주의자들로 변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 애절한 마음으로 율법이 아닌, 할례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고 그 안에 참된 자유가 있음을 1-5장까지 책망도 하고 권면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 율법을 따르라고 하는 사람들이 율법을 강조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육체의 겉모양을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강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는 겉모습으로,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이유는 진정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신의 교만함, 자신의 높아짐, 육신의 정욕과 원함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받는 박해를 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들을 자랑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13절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들 스스로도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여러분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는 것은, 여러분의 육체를 이용하여 자랑하려는 것입니다” 결국 율법주의란 자신을 자랑하려는 육체의 욕심과 정욕을 따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진정 구원 받은 성도들이 자랑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보혈의 피를 흘려 죄 용서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한 행위나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8일만에 할례 받은 자였습니다. 유대인중에 유대인이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을,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요 공의요,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얻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14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았을 때 바울은 14절에 이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사실 빌립보서 3:7-9절의 고백과 동일한 고백입니다.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 성령을 받은 자,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의 방법인 십자가를 깨달으면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라는 고백과 함께 감사함과 겸손함의 믿음의 고백이 터져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며,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하셨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제 더 이상 ‘할례를 받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자인가?”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인가? 아닌가?” 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율법의 정신을 깨닫고 그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으며,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과 인도하심대로 살아가가는 자에게 참된 평강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16절에 “이 표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평화와 자비가 있기를 빕니다” 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깨닫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자비,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