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함의 신앙 (요한복음” (18:15-18)
오늘 본문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사건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러한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없습니까? 예수 믿는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기며 살아가는 모습,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 믿으십니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라는 말 한번 하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베드로가, 우리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예수님을 가까이 함의 신앙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한 후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찌기 떨어져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는 갔지만 멀찍이 따라갔을 때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베드로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명하시지만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지금 가진 것 포기하라고 할까봐, 지금 내가 누리는 이 편안함을 빼앗길까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렇게 멀찍이 예수님을 따르면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반하고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결정적인 순간, 내 자존심이 상하는 순간, 나의 희생을 요구하는 순간, 믿음의 행동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의 모습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나오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이 튀어나오고 순종이 아닌 불순종의 모습이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매 순간 매 순간 동행해야 합니다.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영양분을 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참된 믿음의 결단과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직 주께 바짝 붙어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성령님의 충만하심으로 내 마음과 생각과 감정을 주님께서 다스리실 때,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담대함과 은혜가 마음에 충만할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이 아닌 예수님을 인정하는 예수의 성품, 즉 오래 참음, 낮아짐, 온유함, 친절함, 담대함, 순종, 용서, 용납, 불쌍히 여김, 겸손과 낮아짐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