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하 5:9-14

9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와서 엘리사의 집 문 앞에 멈추어 섰다.
10 엘리사는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요단강으로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장군의 몸이 다시 깨끗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11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12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불평하였다. 그렇게 불평을 하고 나서, 나아만은 발길을 돌이켜, 분을 참지 못하며 떠나갔다.
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 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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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일 것입니다. 나아만은 사람은 그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나라 즉 시리아, 아람이라는 나라의 군 사령관이었습니다. 많은 공을 세웠고 왕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나병에 걸린 것입니다. 나병, 불치의 병, 모든 사람들이 혐오하는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런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서 잡혀와 자신의 집에 종으로 지내는 어린 소녀가 이스라엘 자신의 나라에 엘리사 선지자만 찾아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을 해 줍니다. 이 말을 듣고 시리아 왕의 서신을 들고 군마와 군병들을 데리고 엘리사 선지자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막상 엘리사 선지자 집에 도착했는데 엘리사 선지자는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시켜서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만 전합니다.

그 말에 나아만 장군의 태도를 5:11-12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나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나를 맞이하고,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 다마스쿠스에 있는 아마나 강이나 바르발 강이, 이스라엘에 있는 강물보다 좋지 않다는 말이냐? 강에서 씻으려면, 거기에서 씻으면 될 것 아닌가? 우리 나라의 강물에서는 씻기지 않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하고 분노하며 발길을 돌이켜 고국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이렇게 분노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개역성경으로 11절을 읽으면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나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상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나아만 장군이 분노한 이유가 엘리사 선지자가 자신에게 명한 명과 자신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면 나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달려 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면 엘리사 선지자가 어떻게 자신을 대하고 어떻게 자신을 고쳐 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과 기대가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이었습니까? 집에 도착하면 엘리사 선지자가 뛰어 나와 자신을 환대할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스라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대국인 시리아 나라의 군 사령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높은 위치에 있는 자신이 속국 나라의 한 선지자를 직접 찾아 왔다면 당연히 뛰어 나와 환영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와서 자신의 몸을 만지며 안수하며 간절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 줄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집 사환을 시켜 한마디만 던지는 것입니다.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어라. 그 말에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나아만에게 나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나아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내 기대, 내 도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런 방법을 말해주고 이런 태도, 이런 환경을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의 방법이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노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 시리아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나아만의 문제였고 이것이 우리들의 문제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사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를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에 밀려 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아니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아니 뭔가 다른 것이 있어야지요”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하라” 라고 명하셨는데 “아니 하나님 그게 아니지요, 그런 사람에게는 본떼를 보여 줘야 합니다” 라고 하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내 생각으로 가득 차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 나아만 장군이 분노했습니까? 그 이유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강대국의 군대 사령관인데 내가 찾아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종에게 이렇게 하라고 말했다는 것에 노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내가 누군데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행동하냐는 것입니다. 분노가 왜 생깁니까?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할 수 있냐?” 이거 아닙니까? 어떻게 네가 나한데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냐?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그런 행동을 하냐? 내가 너보다 나이가 얼마나 더 먹었는데? 내가 너에게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 은혜를 모르냐?” 교만한 마음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에 대한 분노함이 있습니까?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교만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에 분노가 생기는 것은 내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장군인데, 내가 집사인데, 내가 나이가 많은데, 내가 얼마나 애쓰고 희생했는데, 나를 높이는 교만함 속에 있기에 분노가 나고 있음을 깨닫고 겸손함으로 낮아지기를 원합니다.

분노하며 불순종하고 떠나려는 나아만 장군에게 부하들이 말합니다. 열왕기하 5:13 “그러나 부하들이 그에게 가까이 와서 말하였다. “장군님, 그 예언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맞는 말 아닙니까? 문둥병이 낫는다면 속된 말로 똥물로 씻으라고 하면 안하겠습니까? 다른 표현으로는 “장군님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하십시오.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 명령이 뭐 그렇게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까?” 라고 부드럽게 설득한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에게는 좋은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지금은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침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시리아에서 먼 이스라엘 사마리아로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 선지자가 하라고 하는대로 행하는 것이 맞고 옳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혜로운 조언을 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러한 나아만 장군의 부하와 같은 옆에서 바르고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인식할 수 있도록 잘못된 생각과 감정들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지혜와 부드럽게 설득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기를 원합니다.

나아만 장군의 위대함은 부하들의 설득하는 말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부하들의 말대로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엘리사 선지자의 명령대로 요단강으로 갑니다. 그리고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씼었더니 나병이 깨끗이 낫고 어린아이 살처럼 치료 되었습니다. 14절입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시킨 대로, 요단강으로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었다. 그러자 그의 살결이 어린 아이의 살결처럼 새 살로 돌아와, 깨끗하게 나았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 앞에 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보다 내 생각대로, 내 경험대로, 내 감정대로 행동하고 말하고 결정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나아만이 자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면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치료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생각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분노의 감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문둥병자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고집이 앞서면 은혜가 막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고 축복이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이성과 생각에 맞지 않았지만 그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깨끗하게 치유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철저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이해되지 않지만 대단히 단순합니다. “가서 씻어라” “가져와라” 베드로에게 “물위로 오라” “드려라, 지키라, 용서하라, 사랑하라” 하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기적, 응답의 내면에는 반드시 순종이 들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말대로 했더니 3년 동안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장님에게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했는데 순종했더니. 순종이란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음의 열매가 순종이고 순종의 결과가 축복입니다.

아직도 내 생각을 못 버리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자존심, 내 분노, 내 상처를 못 버리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도우심과 치료의 손길,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 생각이 높습니다. 나를 버려야 합니다. 내 생각의 굴레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신앙의 장애라는 것을 알고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치료의 역사, 축복의 역사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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