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4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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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할 사랑은 어떠한 사랑입니까? 4절에 이렇게 간단히 말씀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참된 사랑, 우리가 행해야 할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말합니다.
참된 사랑,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의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인데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오래 참는 것입니까? 다른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해 오래 참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 곳곳에 나옵니다. 골로새서 3:12-13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 가운데 “혐의”라는 말을 새번역 성경에는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무엇에 대한 오래 참음이냐면 내가 다른 사람을 보면서 불평할 일, 즉 마음을 힘들게 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게 하는 사람에 대해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어떤 사람일지라도 나와 성격도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릅니다. 어떤 일에 대한 평가와 일을 하는 방식과 때도 다 다릅니다. 그렇기에 마음에 들지 않고 불평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지적하고, 화내고, 설명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남편이요 아내요, 자식이요 교회 성도들입니다. 이웃들입니다. 그렇기에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이웃인데 가장 힘들고 부담되고 불평과 불만이 쌓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면 얼마나 불편하시고 답답하시고 힘드시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가 나와 다른 점에 대하여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분노함 속에 참는 것이 아니라 본문을 보면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가시 돗힌 말을 하며, 도끼눈을 뜨면서, 차갑게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따스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십니까? 출애굽기 34:6을 보면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구약에서 자주 되풀이해서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기에 한결 같은 사랑으로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즉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그러한 은혜와 자비로움의 사랑으로 나와 다른 영혼들, 불평과 혐의가 있는 곁의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이게 우리의 힘으로 되겠습니까? 어찌 우리 결단만으로 되겠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예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따스한 마음이 있을 때 상대가 어떠할지라도 소망 가운데 오래 참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으로 성장될 수 있도록 변화되도록 기도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 영혼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때까지 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오래 참고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 하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함으로 그러한 아가페의 오래 참음의 사랑, 친절함의 사랑을 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오래 참는 사랑은 사람에 대한 오래 참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오래 참음의 사랑은 시험과 어려움에 대한 오래 참음의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2-4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이 성숙 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과정이 바로 시험입니다. 시험이란 어려움, 환난, 핍박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불도가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 성품, 믿음을 세우시기 위해 허락하신 견디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견디는데 어떻게 견디는가? 오래 참는 인내의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는다는 것의 한문이 바로 ‘인(忍)’입니다. 인이라는 한문을 보면 놀랍게도 칼 “도”자 밑에 마음 “심”자가 결합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슴에 칼이 꽂혀 있는 고통이 있어도 그것을 참아야 인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칼이 꽂혔으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상황과 같습니다. 이사야 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신데 비난, 조롱, 채찍, 침 뱉음, 매질,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억울하고 분한 일입니다. 육신의 고통과 심적인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고통과 어려움을 참으셨습니다. 인내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으신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사실 별것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내 뜻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얼마나 원망하고 불평하고 토라지고 더 나아가 분노하고 다투고 싸웁니까? 속이 뒤틀리고, 성질이 치솟고 분노가 폭발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말을 참아야 합니다. 감정을 참아야 합니다.
오래 참는 사랑을 하는 것, 인내의 사랑을 하는 것, 그런 가운데 친절함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사랑을 한다는 것 다시 말하지만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힘을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 오래 참음의 사랑의 삶이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부른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의 사랑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다 나누지 못하겠지만 야고보서 5장을 보면 참으라는 명령이 몇 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농부가 귀한 열매를 바라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참으라 주의 강림이 가까웠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의 인내를 감당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오늘 말씀인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를 다시 한번 기도함 속에 깊이 묵상하시며 다른 사람을 오래 참음으로, 시험과 고난을 오래 참음으로 사랑을 나타내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로 인해 내 삶속에, 가정에, 관계속에, 교회 안에 하나됨과 화목함의 축복의 통로가 되며 하나님께 인정함과 칭찬 하늘의 영광스러운 상을 받는 자로 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