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5:10-12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12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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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에 마지막 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10-11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어려움과 고난을 받는 사람입니다.
일차적으로 박해 즉 핍박이라는 말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육체적, 사회적으로 고난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와 그 후에 기독교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을 때 유대인들로부터 그리고 후에는 특별히 로마 제국에 의해 믿는 성도들이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많은 나라들이 기독교를, 예수를 믿는 신앙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박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것 때문에 개인, 가족, 지역, 사회생활속에서 폭력이나, 살인, 방화, 차별 같은 일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미국에서 살면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 하는 것에 대한 자유함이 있었기에 예수를 믿는 것으로 인해 핍박을 받고 박해를 받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팔복의 말씀인 “의를 위해 핍박과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 있는 사람이다” 라는 말씀에 우리가 어떻게 동참되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첫째는 의를 위해 박해 받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복음 때문에, 믿음 때문에, 예수를 믿고 전하는 삶 때문에 박해를 받는 성도들, 나라들, 교회들,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박해 받고 있는 영혼들, 신앙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힘 주셔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그들의 영혼과 가정과 교회를 지켜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박해하는 그 민족, 그 백성, 그 나라가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복음을 막고, 닫고 있는 그 담이 무너지고, 그 문을 속히 열어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면서 예수 믿는다고 사회가, 국가가 핍박하거나 박해하지 않습니다. 자유롭게 교회를 세우고, 모여서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전혀 박해가 없습니까? 깊이 생각해 보면 비록 육신적으로는 신앙의 자유가 있고 박해가 없는 것 같지만 우리가 사는 이 땅도 박해와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박해와 핍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힘들게 하는 것,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믿음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박해입니다.
핍박, 박해라는 이름은 아닐지라도 죄의 유혹, 말씀과 진리, 정직한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타협과 시험 욕심, 더 나아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믿음이 떨어지게 하고, 미지근하게 하고, 말씀에서 타협하게 하는 것들이 바로 박해입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다는 것은 그러한 죄의 유혹과 시험속에서 꿋꿋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르신 곳, 부름의 자리에서 끝까지 충성하는 것입니다. 아내로, 남편으로, 부모로서, 자녀로서 주님 뜻대로, 사명대로 그 자리를 지키며 감당하는 것이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도로서, 집사로서, 제직으로서, 목사로서 그 사명을 알고 자신의 자리, 섬김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이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나를 부르신 그 자리, 그 역할, 그 자리가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 선교의 자리. 섬김의 자리. 어떨 때는 하기 싫고 가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서 무수한 핍박을 견디고 이기고 순교했던 그 성도들을 생각하면 나를 부르신 그 자리에서 아름답게 의를 위해 박해를 받으며, 그것을 이겨 축복의 사람으로 서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