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14-18
14 누가 이 편지에 담긴 우리의 말에 복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특별히 조심하여, 그와 사귀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십시오.
15 그러나 그를 원수처럼 여기지 말고 형제자매에게 하듯이 타이르십시오.
16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17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합니다. 이것이 모든 편지에 서명하는 표요, 내가 편지를 쓰는 방식입니다.
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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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잘못된 재림에 대한 태도와 모습을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바른 자세와 성도가 지켜야 할 신앙의 모습을 하나 하나 설명하고 알려 주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누가 이 편지에 담긴 우리의 말에 복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특별히 조심하여, 그와 사귀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십시오” “누가 이 편지에 담긴 우리의 말을 복종하지 아니하거든” 이란 말은 3장에 나타나 있는 재림에 대해 잘못 이해하여 가정과 생업을 돌보지 않고 무절제 한 삶을 살아가는, 게으름과 나태함 속에 있는 성도들이 보낸 편지에 말한대로 따르지 않으면 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근거하여 잘못된 신앙의 모습과 태도에 대해 경책하고 돌이키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복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특별히 조심하여 그와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 시대에 흔히 말하는 그 사람을 왕따 시키라는 말처럼 느껴져 언뜻 들으면 거부감이 듭니다.
사도 바울이 그 사람을 조심하고 사귀지 말고 그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라고 한 이유는 말씀에서 벗어난 행동과 태도를 보이는 성도가 교회 안에 있으면 교회 공동체가 어려워지지 때문입니다. 말씀의 책망과 권면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로 하여금 다시금 돌이키고 회복할 수 있도록 잠시는 고통스럽고, 아프고,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교회는 그렇게 함으로 그를 바로 세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에 교회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이 부분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를 뒤에서 “그 사람이 그래서는 안돼. 그런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어” 라고 욕하고, 험담하고, 비난하기는 쉬워도 그 한 사람람을 바로 잡기 위해서 앞에서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면 몇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사실 누군가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당사자도 힘들고 받아 들이는 사람도 불편하고 힘들어 합니다.
요즘 다들 자존심들이 얼마나 쎕니까? 누가 “이것 이렇해 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덕이 되지 않습니다” 등 말하면 대뜸 “너나 잘하세요. 네가 뭔데 나한데 지적질이야” 라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아예 시도 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괜히 그런 이야기 했다가 관계만 불편해 질 것 같아서. 이야기 해 봐야 듣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혹은 언젠가 깨닫고 알겠지 라는 마음으로 방관하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다시 한번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서로의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권면을 하는 사람도, 권면을 듣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해야 하고 상대방이 권면하는 말이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책망이나 혼 내주기 위함이 아닌, 그 사람을 면박을 주고, 세상 표현으로 밟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근거로, 그 영혼을 세우기 위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잘못된 태도와 모습이 있다면 권면해야 합니다. 그것이 권면하고 책망하는 자의 마음과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권면과 책망을 받는 자는 “네가 뭔데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냐?” 라는 반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입술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의한 권면이나 책망이라면 그 사람이 아닌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삶을 돌이키고, 잘못되었다고, 고쳐야 한다고 하는 삶의 태도와 모습을 돌이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으로 말씀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말씀으로 권면하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돌이킬 수 있는 모습이 있는 관계와 교회가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회복과 부흥,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관계와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교회와 그러한 관계가 우리들의 관계, 우리들의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16절입니다. “평화의 주님께서 친히 언제나 어느 방식으로든지,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우리가 진정 붙들어야 할 것이 결국 평화입니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어려움, 어떠한 모습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려야 하는 것이 신앙의 삶입니다. 마음에, 가정에, 관계속에, 교회 안에 하나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신앙,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며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관계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름으로 아름다운 평화의 교회, 평화의 가정, 평화의 관계, 평화의 삶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